항목 ID | GC057010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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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洙妻濟州高氏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두헌 |
[정의]
고려 후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현] 출신의 열녀.
[개설]
제주고씨(濟州高氏)는 고려 시대 군산에 세거한 제주고씨 가문 출신으로 광산 김씨 김수에게 시집을 가서, 감찰관으로 파견된 김수에게 어느 농장 주인이 뇌물을 주려는 것을 받지 않았으며, 삼별초의 난이 일어나 남편이 영광 군수로서 제주도로 파견되었을 때, 남편의 부하 부인들이 뇌물을 주려는 것을 역시 받지 않았다. 남편이 사망한 이후에 60년간 과부로 살면서 자식 교육을 잘 시키고 집안을 화목하게 다스렸다.
[가계]
제주고씨(濟州高氏)는 조정대부(朝靖大夫) 예빈경(禮賓卿)을 지내고 치사(致仕)한 고정(高侹)의 딸이며, 고려 의종 때에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이후 조산대부(朝散大夫) 동궁시강학(東宮侍講學) 예빈경(禮賓卿) 지제고(知制誥)를 지낸 고형중(高瑩中)의 손녀이며, 제주고씨 옥구 입향조 고돈겸(高惇謙)의 증손녀이다. 남편은 본관이 광산(光山)이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참지정사(參知政事) 집현전(集賢殿) 태학사(太學士) 판예부사(判禮部事)를 지낸 김수(金洙)이다. 김수의 아들 김태현(金台鉉)은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 광정대부(匡靖大夫) 첨의중찬(僉議中贊) 수문관 대제학(修文館大提學)을 지냈다.
[활동 사항]
김수(金洙) 처 제주고씨는 고려 시대 군산 지역에 세거한 제주고씨 집안 출신이다. 1222년(고종 9)에 태어났고, 1327년(충숙왕 14)에 사망하였다. 제주고씨가 일찍이 친정에 있을 때에는 공손하며 곧고 유순(柔順)하였으며, 말을 꾸미거나 단정하지 못한 일이 없었다. 시집을 간 후에는 부모를 섬길 때나 자녀와 집안 노비들을 통솔할 때 언제든지 집안이 화목하고 평온하였다. 남편이 밀칙(密勅)을 받들어 황해도 금미장(今彌莊)에 감사(監査)하러 나갔을 때, 어느 농장 주인[莊人]이 남편이 시킨 일이라 하여 숯을 수레에 싣고 보내왔다. 이에 말하기를, ‘그 어른은 도의(道義)에 어긋난 것이면 일찍이 타인으로부터 털끝만큼이라도 물건을 받은 일이 없거늘, 하물며 특파(特派)된 감찰관(監察官)의 신분으로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므로 이는 반드시 거짓으로 꾸며진 일일 것이다.’라고 하면서 문을 닫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밤이 되자 그 농장 주인이 숯을 두고 가버렸는데, 당시 권신(權臣) 전인준(全仁俊)의 아들이 제주고씨의 남편에게 원한을 품고 제주고씨의 남편을 중상(中傷)하려고 전인준(全仁俊)에게 참언하자, 전인준이 사람을 시켜 엿보게 하였으나, 제주고씨가 목탄을 그대로 방치하여 수납하거나 감시하는 자를 두지 아니하므로 감복하여 추궁하지 아니하였다.
삼별초의 난이 일어나자 남편이 영광(靈光) 군수로서 군사를 이끌고 제주도에서 수비할 때에 겨울이 되어 의복을 부치려 하자, 남편의 부하 부인들이 은자(銀子)를 주면서 생계에 보태 쓰도록 여러 번 강청(强請)하였으나 또한 끝내 받지 않으니, 세상 사람들이 존경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남편이 힘써 싸우다가 전사하자, 과부가 되어 60년 간 친척과 화목하게 지내고 노비들과 비첩(婢妾)을 인자하게 사랑하기를 남편이 살아 생전에 하던 것과 똑같이 하였다. 두 아들의 나이가 어렸으나 모두 훌륭하게 교육을 시켜 큰 아들 김태일(金台一)은 신호위(神虎衛) 녹사(錄事)를 지냈고, 둘째 아들은 첨의(僉議)를 지냈다. 『제주고씨 문충공파보(濟州高氏文忠公派譜)』에 고정의 사위로 광산 김씨 김수가 수록되어 있으며, 17세기 중엽 조종운(趙從耘)이 편찬한 『씨족 원류(氏族源流)』에는 김수(金須)의 처(妻)로 옥구인(沃溝人) 고씨(高氏)가 수록되어 있는데, 향년 102세라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