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19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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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음식물/음식물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종안 |
[정의]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서 어패류의 근육·내장 또는 생식소(生殖素) 등에 비교적 다량의 식염을 가하여 알맞게 숙성시킨 발효 식품.
[개설]
젓갈의 숙성은 원료가 되는 근육·생식소 등의 조직 자체에 들어 있는 자가 소화 효소와 내장에 들어 있는 효소의 작용에 의하여 진행된다.
젓갈의 숙성과 관련하여 가장 관계가 깊은 효소는 근육이나 내장의 주성분인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이다. 이것은 단일 효소가 아니고 여러 종류로서 각 효소의 특성에 따라 단백질에서 아미노산까지 분해되는 동시에 특유한 점조성을 띠고 촉감이 좋게 되어 독특한 풍미를 나타내게 된다.
[연원 및 변천]
젓갈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볼 수 있다. 신라 신문왕 조에 따르면, 신문왕이 왕비 김씨를 맞이할 때의 폐백 품목에 쌀·술·기름·꿀·장·메주·포와 함께 젓갈이 들어 있다.
이러한 기록은 젓갈이 이미 그 당시에 주요한 기본 식품이었음을 뜻한다. 당시 젓갈은 어패류로 담근 것뿐만 아니라 채소류에 누룩·술지게미 등을 섞어 담근 절임도 있었다고 보아진다.
[만드는 법]
젓갈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모든 재료는 반드시 소금물로 씻는다. 맹물로 씻으면 저장하는 동안 젓갈의 맛과 색이 변한다. 둘째, 생선의 내장을 빼되 멸치나 작은 생선은 그대로 담근다. 셋째, 재료와 소금의 비율이 10대3 정도가 되도록 한다. 소금이 적으면 저장하는 동안 부패해 버린다.
넷째, 항아리나 유리, 스테인리스 용기에 담아 보관한다. 다섯째, 재료가 공기 중에 노출되지 않도록 돌이나 접시로 눌러서 국물 안에 잠겨 있도록 한다. 여섯째, 보관하는 장소는 서늘하고 어두운 곳이 좋다. 일곱째, 젓갈이 숙성하여 꺼낼 때는 물기가 없는 도구나 손으로 덜어낸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전라북도 옥구군 성산리와 오봉리에서 4월에 잡히는 붉은 중새우의 알을 모아서 새우 알젓을 담가 조선 후기 궁중에 진상품으로 올렸다고 한다. 민물 새우로 담근 젓은 토하젓이라고 하는데, 빨리 익히려면 새우와 밥, 고춧가루를 함께 갈아서 담근다.
전라북도 군산 지역의 대표적인 젓갈은 황석어 젓갈이다. 황석어[황새기]는 농어목 민어과에 딸린 바닷물고기로 군산 지역에서는 ‘황새기’라 불리었다. 어법, 어구가 부실했던 1950~1960년대 해마다 서남해안에서 많이 잡혔으며, 가정에서는 찌개나 구이보다 젓갈을 많이 담가 먹었다. 지금도 군산 째보 선창에 나가면 황석어젓을 담그던 젓 탱크[젓당꼬]흔적을 볼 수 있는데, 황석어젓은 한때 군산을 상징하는 젓갈이기도 했다.
황석어는 잡히는 시기도 조기와 비슷한 봄철이고, 생긴 모양과 색깔도 비슷해서 참조기 새끼로 착각하기 쉬운 생선이다. 어학 사전에서도 ‘참조기를 달리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오류이다. 멸치가 크다고 해서 꽁치가 될 수 없듯, 황석어는 10㎝ 이상 성장해도 참조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종이 다르기 때문이다.
황석어는 참조기에 밀려 인기가 덜했지만, 조기 사촌인 부세[부서]나 백조기보다 맛이 좋았고, 먹는 방법도 다양했다. 군산 째보 선창에서는 좀 멍청하거나 모자란 사람을 비유할 때 ‘황석어도 조기냐!’라는 우스개가 유행하기도 하였다.
1969년 '동지나 어장' 개발 전에는 조기 어장이 끝나는 5월에 황석어 잡이가 시작됐는데, 군산 째보 선창에는 황석어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 많은 황석어는 지게꾼과 구루마꾼에 의해 젓 탱크[젓당꼬]로 옮겨져 젓을 담갔다. 탱크에서 가을까지 숙성시킨 젓갈은 ‘밥도둑’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맛이 좋았으며, 짠맛이 나면서도 구수한 젓국은 김장할 때 사용하였다.
군산 지역 주부들이 황석어 젓국을 얼마나 선호했는지는 30개가 넘는 째보 선창 부근의 젓 탱크[깊이 2~3m]와 가을이면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선창가 풍경이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