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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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祭禮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집필자 | 이상우 |
성격 | 평생 의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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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 시기/일시 | 제사 |
[정의]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서 조상을 숭모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행해지는 의식.
[개설]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하늘과 땅과 달과 별을 비롯하여 풍사(風師), 우사(雨師), 사직(社稷), 산악(山岳), 강천(江天) 그리고 선왕(先王), 선조(先祖), 선사(先師)들에게 제사를 지내왔는데, 제례(祭禮)란 제사(祭祀)를 지내는 여러 가지 예절을 말하며 신명을 받들어 복을 비는 의식이다.
오늘날 제사(祭祀)라고 하면 선조에 대한 의례를 가리키는 것으로 되었고, 조상 숭배의 개념으로 인식되어서 제사란 조상 숭배의 행위라고 말하게 되었다.
[연원 및 변천]
우리나라에서 조상 숭배의 개념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시기는 중국 유학(儒學)의 영향을 받은 이후라고 볼 수 있다. 성리학이 수입된 고려 후기부터 함께 수입된 『주자가례(朱子家禮)』는 우리나라의 조상 숭배 사상을 보편화시키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고, 그 영향은 성리학에 바탕을 둔 치국 이념(治國理念)을 채택한 조선 시대에 더욱 왕성했다.
조선 후기에는 학자이자 정치가인 이재(李縡)[1680~1746]가 관혼상제의 사례에 대해 저술한 사례편람(四禮便覽)이 나오면서 생활 속에서 기준을 삼고 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제례는 사당제(祠堂祭), 시제(時祭), 기일제(忌日祭), 이제(禰祭), 묘제(墓祭)로 구분할 수가 있다.
군산과 옥구 지역에도 예전에는 오랫동안 내려왔던 가문의 제례 방식으로 제사를 지내왔는데, 요즈음은 생활 형태가 예전과 많이 달라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책을 많이 참고함으로 인해 어느 지역이나 비슷하게 되어가고 간단하고 축소화해서 제사를 지내는 경우가 많다. 보통 군산과 옥구 지역은 밤 11시에서 그 다음 날 1시까지 드렸지만 집안의 형편에 따라 제사지내는 시간이 빨라지고 있는 추세이다.
군산시 대야면 산월리 주민 이복래[82세]씨는 이러한 추세가 된다면 차라리 제삿날을 돌아가신 날 드리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하였다.
[절차]
제사 지낼 장소를 마련하고 기구들을 깨끗이 닦아 진설한다. 바닥에 자리를 깔고 북쪽에 병풍을 친다. 반드시 신위 모실 곳을 북쪽으로 간주한다. 혹시 집구조가 북쪽으로 할 상황이 아니면 신위 모실 곳이 북쪽이라 여기고 드리면 된다. 교의 앞에 제상(祭床)을 놓고 제상 앞에 향안(香案)을 놓으며, 향안 위에는 향로와 향합(香盒)을 놓고, 그 앞에는 모사(茅沙)그릇을 놓는다. 향안 옆에는 주가(酒架)를 놓고 그 위에는 술 주전자, 강신 잔반(降神盞盤)을 놓는다.
시접(匙楪), 잔반을 신위에 놓고, 과실, 포(脯), 해(醢), 소채(蔬菜) 등을 제자리에 진설한다.
먼동이 트려할 때에 주인이하 모두 복장을 갖추고 사당에 나아간다. 주인이 문을 열고 들어가 분향하고 꿇어 앉아 사유(事由)를 고한 뒤에 신주를 받들고 나와서 교의에 모신다. 사당이 없을 때 에는 지방(紙榜)을 써서 교의에 모신다.
1. 참신(參神)
신께 뵙는 의식으로, 주인이하 모두 신위를 향하여 2번 절한다. 신주가 없어서 지방을 모실 때는 먼저 강신하고 뒤에 참신한다.
2. 강신(降神)
신을 강림하게 하는 의식으로 주인이 앞으로 나아가 분향하고 조금 뒤로 물러나서 선다. 집사 한 사람이 주가(酒架)위의 강신 잔반(降神盞盤)을 집어서 주인의 왼쪽에 서고, 또 한사람이 술 주전자를 잡고 오른쪽에 선다.
주인이 꿇어앉으면 잔반을 잡은 자도 꿇어앉아 잔반을 주인에게 준다. 주인이 이를 받으면 주전자를 잡은 자도 꿇어 앉아 잔에 술을 따른다. 주인은 왼손으로 잔대를 잡고 오른손으로 잔을 잡아 모사 그릇에 3번 기울여 붓는다. 몸을 굽혀 엎드렸다가 일어나서 재배하고 제자리로 돌아와 선다.
3. 진찬(進饌)
주인인 앞으로 나가면 주부가 뒤를 따른다. 집사 한 사람은 반(飯)에 고기와 생선, 한 사람은 편과 면, 또 한 사람은 반과 갱을, 주부는 편, 면, 반을 받들어서 제자리에 올려놓는다. 진찬을 마치면 주인 이하 모두 제자리로 돌아선다.
4. 초헌(初獻)
처음으로 술을 드리는 의식이다. 주인이 신위 앞에 나아가 꿇어앉으면 오른쪽의 집사가 신위 앞에 놓인 잔반을 받들어 주인에게 주고 술 주전자를 잡아 술을 잔에 따른다. 주인은 이것을 왼쪽 집사에게 주어 신위 앞에 드리게 한다.
오른쪽 집사가 다시 신위 앞의 잔반을 받들어 주인에게 주면 주인은 잔반을 받아 모사 그릇에 3번 조금씩 기울여 따르고 잔반을 다시 집사에게 주어서 제자리에 놓게 한다. 몸을 굽혀 엎드렸다가 일어나 조금 뒤로 물러나 선다.
주인의 형제 가운데 한 사람이 육적(肉炙)을 받들어 신위 앞에 있는 시접 남쪽에 놓는다. 그리고 밥그릇의 뚜껑을 열어서 남쪽에 놓은 다음 물러나 제자리에 선다. 축관이 축판을 들고 주인의 왼편에 섰다가 동쪽을 향해 꿇어앉으면 주인이하 모두 무릎을 꿇는다. 축문을 읽는다.
5. 아헌(亞獻)
주부가 잔을 올리는 의식으로, 절차는 초헌과 같으나 축을 읽지 않으며 적(炙)을 진설한 다음 주부가 4배하고 자리에 물러나 선다.
6. 종헌(終獻)
주인의 자질(子姪)들이 잔을 올리는 의식으로, 절차는 아헌과 같으며 적(炙)을 진설한 다음 헌자(獻者)는 재배하고 자리에 선다.
7. 유식(侑食)
영위에게 음식을 권하는 의식으로 집사자가 잔에 첨주한 다음 젯메에 숟가락을 꽂고 젓가락을 시접위에 손잡이 부분이 서쪽으로 가게 올려놓는다.
8. 합문(闔門)
유식이 끝나면 주인 이하가 문 밖으로 나가 잠시 기다린다.
9. 계문(啓門)
3번 기침을 하고 문을 열면 주인 이하가 다시 들어가 자리에 서고 집사자는 국을 물리고 숭늉을 진설한 후 숟가락으로 밥을 3번 떠서 물에 만다.
10. 사신(辭神)
의식이 끝나는 절차로 주인이하가 꿇어앉으면 집사자가 숟가락과 젓가락을 내려 시접에 얹고 밥뚜껑을 덮은 다음 일동 재배한다. 축과 지방을 태우고, 신주일 경우는 독개(櫝蓋)를 덮은 다음 가묘로 환봉하는데, 주인이하가 따른다. 그 후 집사자는 진설한 제물을 물린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은 일반적인 제례 의식으로 이것을 접목해서 각 가정마다 기준으로 삼아 상황에 맞게 제사를 지내고 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군산 지역도 기본적으로 지금까지 나열한 것을 토대로 제사를 드리고 있는데, 군산시 옥구읍 선제리 주민 서갑석[84세]씨의 증언을 토대로 몇 가지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기일이 다가오면 3일 전부터 제사상에 올릴 음식을 준비하며 몸을 깨끗이 씻고 제사지낼 때 입을 반드시 빨아서 준비하고 병풍이 있는 집에서 병풍을 빌려다가 병풍을 치고 제사를 지냈다.
음식을 준비할 때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전날 오셔서 제사 음식을 하는데 서로서로 도와주었다. 주고 제사를 지낸 다음날에는 떡이나 여러 제사 음식을 아이들을 통해서 집집마다 나눠주고 동네 친한 분들을 점심에 불러서 같이 식사를 하는 풍경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제사 음식을 진설할 때 일반적으로 신위를 기준으로 오른쪽에 밥을, 왼쪽에 국을, 술잔을 옆에 두었다. 서갑석 씨는 ‘보통 사람들이 식사를 할 때 왼쪽에 밥, 오른쪽에 국을 놓고 식사를 하듯이 조상님도 똑같이 해야 편하지 않겠냐?’라고 생각하여 술잔도 밥과 국 앞에 진설하여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그리고 제사를 지낼 때 형편이 아무리 어려워도 조율시(棗栗柿) 왼쪽부터 순서대로 꼭 제사상에 올려야 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조는 임금, 율은 삼정승, 시는 백성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喪)이 나면 3년 상을 치루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첫해는 소상(小喪) 둘째 셋째 해는 대상(大喪)으로 제사를 지내왔는데, 일제 강점기 때 개화사상이 들어오면서 군산시 미룡동에서 의원을 하였던 조씨 집안부터 1년 상으로 바꾸기 시작하면서 군산 지역도 그 전통이 무너졌다고 한다.
군산 지역에서도 예로부터 입제 일에는 음주와 가무를 삼가며, 제사일 30일 안에 상이 나면 가지 않고 부의금만 보냈고,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고인의 생존 시를 회상하며 추모해왔다. 집안에서 출산을 하면 21일 동안에는 궂은일이나 상집에는 가지 않는 것을 당연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