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4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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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愛國啓蒙運動 |
영어공식명칭 | Campaign for the promotion of patriotism |
이칭/별칭 | 계몽운동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대웅 |
[정의]
개항기 경산 지역에서 전개된 국권 회복을 위한 실력 양성 운동.
[개설]
대한제국 시기 국권 회복 운동은 의병전쟁과 애국계몽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애국계몽운동은 갑신정변과 독립협회 운동으로 대표되는 개화 자강 계열의 민족 운동을 계승한 것이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을 계기로 개화 자강 계열의 지식인들은 국권 회복을 위한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를 주도한 대표적 단체는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와 대한협회(大韓協會), 그리고 신민회(新民會) 등이었다. 애국계몽운동은 국권 회복을 위한 신교육운동(新敎育運動)과 산업진흥운동(産業振興運動), 그리고 국민계몽운동(國民啓蒙運動)으로 전개되었다. 경산 지역에서는 국권 회복을 위한 신교육운동과 국채보상운동이 애국계몽운동의 주류를 이루었다.
[대한협회 자인지회]
을사늑약 이후 국권 회복 운동은 더욱 거세졌는데, 경산 지역 보수 유림들은 의병전쟁보다는 대체로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런 가운데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가 1907년 8월 강제 해산되고, 11월에 대한협회(大韓協會)가 설립되었다. 이에 1908년 10월 자인 지역 유림들이 대한협회에 지회 설립을 신청하였으며, 같은 해 11월 대한협회 자인지회가 설립되었다. 이후 대한협회 자인지회는 해체될 때까지 신교육운동을 비롯해 각종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신교육운동]
경산 지역 신교육운동은 교육흥학(敎育興學)·민지계발(民智啓發)·상업발달(商業發達) 등을 표방한 애국계몽운동의 하나였다. 이 운동의 목적은 교육과 흥학을 최우선으로 삼고 애국 정신과 민족 의식을 고취시켜 국권 회복을 달성하는데 있었다. 그런 가운데 경산 지역에서는 포명학교(布明學校)·양성학교(養成學校)·배의학교(培義學校)·덕숭학교(德崇學校)·삼산학교(三山學校)·명륜학교(明倫學校)·진명학교(進明學校)·풍진학교(豊進學校)·계동학교(啓東學校)와 같은 사립학교가 설립되어, 신교육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국채보상운동]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제는 차관 1,300만원을 빌미로 대한제국을 경제적으로 예속시키려 하자, 1907년 1월 전국 각지에서 이른바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다. 경산에서는 1907년 4월 경산군국채보상단연동맹회(慶山郡國債報償斷煙同盟會)가 조직되어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인접 고을에도 영향을 끼쳐 하양군에서도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