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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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無憂園事件 |
영어공식명칭 | Incident of Muwuw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영범 |
[정의]
1940년대 경상북도 경산 출신 인사가 참여한 비밀결사 조직의 독립운동.
[개설]
무우원(無憂園) 사건은 1943년 항일 비밀결사 조직이었던 무우원이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관련 인사들이 체포된 사건이다. 무우원은 1940년 경산군 하양면[지금의 경산시 하양읍] 출신의 대구사범학교 학생 현영만(玄泳晩) 외 여러 학생이 결성한 항일 비밀결사 조직이었다. ‘무우원’은 글자 그대로 ‘근심·걱정 없는 낙원’이란 뜻이다. 무우원은 승려 출신으로 결사를 주도한 조형길(趙亨吉)[본명 조소영(趙宵影)]의 제안으로 지어진 불교 색채의 이름이다.
[역사적 배경]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1941년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전쟁을 도발하고 조선 민중의 인력과 물자의 총동원을 강제해가며, 민족말살까지 획책하였다. 이에 위기 의식을 느낀 청년 학생층은 각종 비밀결사를 조직하며, 일제에 대응해 나갔다. 이러한 흐름 속에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이 비밀결사 조직인 무우원을 결성하였다.
[경과]
1940년 4월 대구사범학교 특설강습과에 입학한 평안남도 순천 출신의 조형길, 경상북도 달성 출신의 김병욱(金炳旭),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현영만 3인은 같은 해 6월 뜻을 같이하여 비밀결사를 조직하기로 밀약하고, 다른 동급생 이형수(李亨洙) 외 여러 명을 포섭하였다. 12월 1일에는 학교 근처 대봉정(大鳳町)의 이형수 하숙방에서 무우원을 결성하고 약칭 ‘M’이라 했다. 조형길, 김병욱, 현영만은 『백유경(百喩經)』의 대승불교 정신에 입각하여 폭력적인 투쟁을 지양하고, 조선어문학 연구를 통한 문화 향상과 경제 부문의 실력 양성으로 민족의식의 고양과 독립을 이루어 민족의 낙원을 건설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무우원은 조직 결성과 함께 규약을 정하고 집행장 아래 총무부·선전부·경제부·과학부·종교부·문예부·후생부 등 7개의 부서를 두었다. 집행장은 조형길, 총무부장은 현영만, 경제부장은 김병욱이 맡았다. 무우원은 불교의 가르침대로 음주와 흡연을 하지 않고, 일제가 내세우는 내선일체론(內鮮一體論)의 기만성과 동조동근설(同祖同根說)의 허구성을 폭로하였다. 그리고 ‘학도지원병’ 모집, 공출과 징용 등 일제의 강압적인 요구들을 모두 거부하는 것을 행동 방침으로 정하였다.
조형길은 일본 도쿄로 건너가 아사쿠사[淺草]의 불교전문학원에 다니면서 강증룡(姜曾龍)·최수원(崔壽源)·박희경(朴希景)·김기동(金基東) 등 여러 명을 동지로 규합하였다. 국내에 남은 현영만·김병욱·이형수는 1941년 3월말에 대구사범학교를 수료하고 전원 국민학교 교사가 된 후에 조직 확대를 꾀하여, 서영수(徐永洙)·박찬억(朴讚億)·허병(許柄) 등 3명 외에 양산 통도사의 승려 윤석주(尹錫柱)와 전찬조(田贊祚), 여성 이금선(李錦仙)·양경덕(梁卿德) 등 7~8명을 끌어들였다. 조직원들은 저축 장려 활동을 가장하여 ‘엔을 저금함[貯丹]’이라는 명목으로 성금을 각자 김병욱에게 보내어 200엔이 적립되면 소 여덟 마리를 사서 달성군(達城郡) 하빈면(河濱面)의 한 농가에 입식시킬 계획을 세웠다. 아울러 기관지와 인쇄물도 발간하여 결속력을 다져 나갔다.
[결과]
1943년 6월 어느 조직원의 밀고로 경찰에 발각되어 조직원 18명이 줄줄이 붙잡혀갔다. 그 중 13명은 검사국의 예심 결과 6개월 이내에 풀려났고, 도쿄지부장이던 최수원은 취조 받던 중에 대구경찰서 유치장에서 피를 토하고 목숨을 잃었다. 결국 핵심조직원인 조형길·현영만·김병욱·강증룡 4인이 기소되었고, 1944년 6월 1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조형길 5년, 김병욱 3년 6월, 현영만 3년, 강증룡 1년 6월의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옥고를 겪던 조형길은 1945년 6월 옥중 순국하였고, 김병욱, 현영만, 강증룡은 8·15 광복으로 출옥하였다. 1988년에 조형길은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을, 김병욱과 현영만은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의의와 평가]
무우원은 1940년대 일제가 조성해놓은 전시 총동원체제 속에서 경산 출신의 청년 학생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비밀결사 조직이다. 철저히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갔다는 점에서 특색 있는 독립운동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