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5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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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山泉齋 |
영어공식명칭 | Sancheongjae House |
이칭/별칭 | 고봉초당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삼성현로 484-8[사동 42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순한 |
건립 시기/일시 | 1632년 - 산천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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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868년 - 산천재 경상북도 경산시 상방동에서 사동으로 이전 및 중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9년 - 산천재 중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4년 - 산천재 영모당 건립 |
현 소재지 | 산천재 - 경상북도 경산시 삼성현로 484-8[사동 425] |
원소재지 | 고봉초당 - 경상북도 경산시 상방동 |
성격 | 재사 |
양식 | 겹처마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6칸 |
측면 칸수 | 3칸 |
관리자 | 청주 한씨 종중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사동에 있는 조선 후기 재사.
[개설]
산천재(山泉齋)는 1632년(인조 10) 청주 한씨 경산 입향조인 한순(韓珣)[1557~1627]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재사(齋舍)이다. 한순의 자는 동옥(東玉), 호는 고봉(鼓峰)이다.
[위치]
산천재는 경상북도 경산시 사동 냉천골 산기슭에 위치해 있다. 남쪽으로 냉천골과 냉천지가 있으며, 북쪽에는 아파트 단지가 있다.
[변천]
산천재는 한순이 경상북도 경산시 상방동에 이주하여 건립하였던 고봉초당(鼓峰草堂)에서 유래한다. 한순이 죽자 그의 아들 유계(柳溪) 한경조(韓景祚)[1585~1638]는 3년상을 치른 뒤 평생 무덤 옆에 살고자 하였고, 형과 사촌들이 힘을 더하여 1632년(인조 10) 경산시 사동에 산천재를 건립하였다. 산 아래 바위 사이에 감천수(甘泉水)가 있고, 주자의 한천정사(寒泉精舍)의 뜻을 따라 ‘산천(山泉)’이라 하였다.
이후 청주 한씨 문중 서당으로 운영되었으며, 건물이 점차 쇠락하여 1868년(고종 6)에 중건하였다. 1989년에 문중의 공론으로 옛 건물을 철거하고 한 차례 더 중건하였다. 2004년에 산천재 건물 뒤편에 조상의 혼백을 모시는 영모당(永慕堂)을 건립하였다.
[형태]
산천재는 정면 6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 건물이다. 중앙에 2칸의 우물마루를 깔고 좌우에 온돌방을 두었으며, 전면에 툇간을 설치하였다. 가구(架構) 형식은 5량가(五樑架)이며, 기둥 위는 3익공(三翼工)으로 장식하였다.
[현황]
산천재의 관리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내부에는 1632년 산천재 건립 당시 한신이 쓴 「산천재기(山泉齋記)」, 한계원(韓啓源)[1814~1882]이 쓴 「산천재중건기(山泉齋重建記)」, 한응유(韓應裕)가 쓴 「산천재재중건기(山泉齋再重建記)」 등의 기문이 걸려 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