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701 |
---|---|
한자 | 韓珣 |
영어공식명칭 | Han Soon |
이칭/별칭 | 동옥(東玉),고봉(鼓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출생 시기/일시 | 1557년 - 한순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616년 - 한순 국문 당함 |
몰년 시기/일시 | 1627년 12월 28일 - 한순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632년 - 한순 산천재 건립 |
출생지 | 한순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
거주|이주지 | 한순 이주지 - 경상북도 경산시 상방동 |
수학|강학지 | 한순 강학지 - 경상북도 경산시 상방동 |
묘소|단소 | 한순 묘소 - 경상북도 경산시 사동 |
사당|배향지 | 한순 배향지 - 경상북도 경산시 삼성현로 484-8[사동 425]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청주 |
대표 관직|경력 | 군자감 직장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 정착한 문신.
[개설]
한순(韓珣)[1557~1627]은 효행으로 천거되어 조봉대부(朝奉大夫) 군자감 직장(軍資監直長) 등을 지냈다. 광해군 연간 해주옥사(海州獄事)를 풍자하는 시를 지었다가 국문을 당하였다. 경산의 청주 한씨 입향조이다.
[가계]
한순의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동옥(東玉), 호는 고봉(鼓峰)이다. 임진왜란 후 성주(星州)에서 경산(慶山)으로 이거(移居)한 절도공파 직장 종중의 입향조(入鄕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병마절도사 한만손(韓萬孫)이며, 증조할머니는 대사헌 이흥문(李興門)의 딸 경산이씨(京山李氏)이다. 할아버지는 울진현령을 역임한 한돈(韓暾)이다. 아버지는 충순위 한국주(韓國柱)로 형조참의에 증직되었다. 어머니는 충순위 박문완(朴文琬)의 딸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한순의 부인은 통정 최희덕(崔希德)의 딸 경주 최씨(慶州崔氏)이다.
[활동 사항]
경상도 성주목 출신의 한순은 1592년(선조 25)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아버지와 큰 형을 연달아 잃었다. 전란 중이었지만 예절에 따라 장례를 엄숙히 지낸 한순은 큰조카 한경희(韓景禧)와 아들 한경조(韓景祚)를 데리고 피난을 떠났다. 전란이 끝난 후 경산현 상방리[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상방동] 장고산(長鼓山) 기슭으로 이거하였다. 그리고 이곳에 고봉초당(鼓峰草堂)을 짓고 독서에 전념하였다. 현령 조형도(趙亨道)가 효행으로 주청하여 군자감 직장에 제수되었다. 1616년(광해군 8) 대북(大北) 세력은 이른바 해주옥사를 일으켜, 반대파였던 소북(小北) 세력을 제거하였다. 이때 한순은 시를 지어 해주옥사를 풍자했다가 체포되어 국문을 받았다.
[학문과 저술]
한순의 유시(遺詩)로 「고봉초당시(鼓峰草堂詩)」가 전한다.
[묘소]
한순의 묘소는 경상북도 경산시 사동 종산(宗山)[산천재 위치] 중원(中原) 오좌(午坐)에 부인 경주 최씨와 쌍분으로 조성되었다.
[상훈과 추모]
1632년(인조 10)에 한순의 아들 한경조가 한순을 기리기 위하여 산천재(山泉齋)[경상북도 경산시 삼성현로 484-8]를 건립하였다. 산천재는 1868년(고종 5) 중건되었으며, 1989년 후손들이 재중건하였다. 한순이 세운 고봉초당의 유허비(遺墟碑)가 경산 백천동에 조성된 인공폭포 옆에 세워져 있다. 우의정 한흥일(韓興一)[1587~1651]이 묘갈명을 짓고, 후손 한상준(韓尙儁)이 소기(小記)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