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 정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619
한자 東萊 鄭氏
영어공식명칭 Donglae Jeong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기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568년 - 정응지 출생
입향 시기/일시 1604년연표보기 - 동래 정씨 정응지 입향
본관 동래 - 부산광역시 동래구
입향지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선화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환상리 지도보기
성씨 시조 정회문
입향 시조 정응지

[정의]

정회문을 시조로 하고 정응지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경산시의 세거 성씨.

[연원]

동래 정씨의 본관인 동래는 초기 국가 시대에 변한에 속하였으며, 거칠산국(居漆山國), 장산국(萇山國) 등으로 불렸다. 신라가 점령한 후 거칠산군(居漆山郡)으로 고쳤으며, 경덕왕 때 동래군으로 개칭하였다. 고려 현종 때 울주에 편입시켰다가 1547년(명종 2)에 동래부로 승격되었다. 1895년(고종 32)에는 관찰부를 설치하였고, 1903년 동래군으로 고쳤다. 1910년 국권 피탈과 함께 부산부에 예속되었고, 1914년에는 행정 구역 조정으로 부산부 일부 구역과 기장군(機張郡) 일원을 병합하여 동래군으로 분리되었다. 해방 이후 부산광역시 동래구가 되었다.

동래 정씨의 시조는 신라 초기에 정씨 성을 하사받은 취산진지촌장 지백호(智白虎)의 후손 정회문(鄭繪文)이다. 정회문은 고려 시대에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냈다. 정회문 이후 세계에 대한 기록이 없어 고려 초에 보윤(甫尹)을 지낸 정지원(鄭之遠)을 1세(一世)로 한다.

[입향 경위]

동래 정씨 경산 지역 입향조는 1909년에 쓰인 『장산지(獐山誌)』 성씨 조에 의하면 정응지(鄭應智)[1568~1643]라는 인물이다. 정응지의 호는 농수(農叟)이고, 경주 교촌동에서 출생하였다. 37세가 되던 1604년(선조 37)에 진량면 선화동[현 진량읍 선화리]으로 이거하였다. 정응지는 사재를 털어 금호강 상류에 건흥지[현재의 연지]라는 보를 축조하여 지역에서 인망이 높았다. 공을 인정받아 조정으로부터 가선대부(嘉善大夫)를 제수받았다.

[현황]

동래 정씨는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자료에 의하면 경산 지역에 4,397명이 거주 중이다. 하양읍 환상리에 집성촌이 있다.

[관련 유적]

동래 정씨 관련 유적으로는 정응지를 기리는 우모소인 애련정(愛蓮亭)이 있다. 정응지가 건흥지를 축조한 후 못가에 애련재(愛蓮齋)를 건립하였는데, 시간이 흘러 퇴락하자 후손들이 정응지를 기리기 위해 1927년에 애련정을 다시 지었다. 진량면 선화4리 윤성아파트 인근에 있다. 전면에는 3칸 규모의 평대문(平大門)을 세웠으며,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애련정이 서남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정자 뒤쪽에는 비각이 별도의 공간을 이루며 자리하고 있다. 비각 안에는 정응지가 건흥지를 축조한 공로를 기리기 위해 연지가 수리조합에 이관되던 1927년에 건립한 농수정공포공비(農叟鄭公褒功碑)가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3.11.30 내용 변경 [연원] 정지원(鄭之遠)을 일세조(一世祖)로 한다. → 정지원(鄭之遠)을 1세(一世)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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