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6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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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谷-里 忠州 石氏 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금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중휘 |
현 소재지 | 금곡1리 충주 석씨 집성촌 -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금곡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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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동성 마을 |
가구수 | 37가구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금곡리에 있는 충주 석씨 집성촌.
[개설]
금곡1리 충주 석씨 집성촌은 충청북도 충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충주 석씨의 동성 마을이다. 충주 석씨의 시조는 석린(石隣)이다. 고려 의종 때 서경낭장(西京朗將)으로 발탁되었고, 1176년(명종 6)에는 상장군(上將軍)·동서북면병마사(東西北面兵馬使)에 올랐다. 금곡리 입향조는 수암(秀岩) 석재사(石載士)이다.
[명칭 유래]
충주 석씨 집성촌이 자리한 금곡리는 마을 뒷산에서 철과 동이 난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윗골, 쇳골, 숫골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다가 ‘금곡’이라는 이름으로 정착되었다.
[형성 및 변천]
충주 석씨 집성촌이 자리한 금곡리는 1500년 무렵에 청도 김씨가 개척한 마을이라고 전해진다. 충주 석씨의 입향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입향조는 밀양에서 이거하여 온 석재사로 알려져 있다.
[자연환경]
충주 석씨 집성촌이 자리한 금곡리는 남천면 소재지의 남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남쪽에는 신방산이, 북쪽에는 오동지가 자리 잡고 있다.
[현황]
충주 석씨 집성촌이 자리한 금곡1리에는 1993년 당시 총 67호가 거주하고 있었다. 67호 중 충주 석씨는 37호였다. 현재[2020년]는 금곡1리에 76호 169명이 거주 중인데, 절반 정도가 충주 석씨이다. 마을 주민의 주 생업은 포도·복숭아를 중심으로 한 과수 농사이다. 입향조인 석재사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지은 재사인 경재정(敬梓亭)이 마을 내에 있다.
한편, 마을 입구에는 황씨 부인 효부각도 있는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의성군에 살던 창원 황씨 부인은 금곡리에 사는 충주 석씨 석인수라는 젊은이에게 시집을 왔고,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열아홉에 과부가 되고 말았다. 황씨는 시부모를 극진하게 모셨는데, 얼마 가지 않아 시어머니가 돌아가자 30년 동안 시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돌보았다. 시아버지가 몸이 좋지 않자 황씨가 개울에 가서 자라를 찾으니 자라가 스스로 뛰쳐나와 끓여 대접하였다고 한다.
과거에는 음력 정월 보름이 되면 마을의 당집에서 동제를 지냈으나, 1960년대에 당집이 사라지고 동제도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