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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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開明 |
영어공식명칭 | Kang Gaemyu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감병훈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교복.
[개설]
강개명(姜開明)[?~?]은 경산향교(慶山鄕校)의 교복(校僕)으로 임진왜란 때 병화를 피해 오성(五聖)의 위패를 성암산(聖巖山)에 안치하였다.
[가계]
강개명의 본관은 진주(晉州)로 자세한 가계는 전해지지 않는다.
[활동 사항]
강개명은 본래 경산향교의 교복이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가고 혼란한 상황은 지속되었다. 이 때문에 향교에 봉안된 오성[공자(孔子)·안자(顔子)·증자(曾子)·자사(子思)·맹자(孟子)]의 위패가 방치되고 소실될 위기에 처해졌다. 이에 강개명은 직접 위패를 지게에 지고 성암산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가파른 절벽에 위치한 석굴에다가 위패를 안치하여 병화를 피할 수 있다. 전란이 끝난 후 나라에서 강개명의 부역(賦役)을 면제하고, 충의위(忠義衛)에 배속시켜 주었다.
[상훈과 추모]
성암산에는 강개명의 행적과 관련된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한다. 그 중 하나는 성암산의 지명 유래인데, ‘성암’이 오성의 위패를 안치한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또한 위패를 안치한 굴이 해발 300m 지점에 있는 범굴이라는 이야기가 있으며, 이곳이 예전에 산신령의 거처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