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5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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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海南北平達梁鎭城 |
영어공식명칭 | Haenam Bukpyeong Dallyangjinse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 282-7 외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신동범 |
건립 시기/일시 | 조선 전기 - 해남 북평 달량진성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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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10년 11월 19일 - 해남 북평 달량진성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19호로 지정 |
소재지 | 해남 북평 달량진성 -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 282-7 외 |
성격 | 석축성 |
지정 면적 | 826㎡ |
소유자 | 해남군 |
관리자 | 해남군 |
문화재 지정 번호 |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19호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석축성.
[개설]
해남 북평 달량진성(海南北平達梁鎭城)은 정확한 축조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성종 대 왜구의 해안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보이며, 조선 초기 만호가 배치되었던 우수영 관할의 진성이다. 해남군 북평면은 제주도로 향하는 해상 교통의 한 축을 담당하였던 곳이다. 해남 북평 달량진성과 관련하여 달량진왜변[을묘왜변]과 해남 성내리 수성송에 대한 유래가 전한다.
[변천]
해남 북평 달량진성의 축조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달량진(達梁鎭)은 완도군 달도(達島)와의 사이의 물목으로 강진, 완도, 영암 등을 연결하는 해로상의 요충지이다. 원래 지명은 ‘달도’였으나 1478년 ‘달량’으로 개명되었고, 이후 완도의 ‘달도’ 와 구분하기 위해 ‘고달도’라 불렀다. 달량진은 조선시대 초기에는 영암군에 속하였는데, 전라우도 관내의 내례, 돌산, 축두, 녹도, 회령포, 마도, 어란 등과 함께 만호가 배치되어 중선(中船) 7척, 맹선(孟船) 2척, 소군(小軍) 519명, 초공(梢工) 4명이 소속된 진성이었다. 그러나 1440년(세종 22) 우수영이 무안 대굴포에서 본현인 황원곶(黃原串)이 옮겨짐에 따라 우수영 관할로 이속되었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에는 ‘병선박입(兵船泊立)’이라 하여 이때는 선상에서 적침을 방어하였다. 진성의 축성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성종 대 해방 시설의 축조와 시기를 같이 하여 성종 대 축조된 것으로 보이며, 1522년(중종 17)에 강진 가리포로 옮겨 간다. 『동국여지지(東國與地志)』는 이진 연대를 1521년(중종 16)으로 기록하고 1555년(명종 10)의 달량진왜변[을묘왜변]을 수록하고 있다. 왜선이 달량진에 침입하여 절도사 원속 및 장흥부사 한온 등을 살해하고 영암군부 이덕견을 포로로 하였다. 어란포[현 송지면 어란리의 어란진]·마도[현 강진군 대구면 마량의 마도진]·가리포[현 완도군 완도면 군내리 가리포진] 등의 진과 장흥부·병영·강진 등의 여러 읍을 함락시키고 살육을 자행하였다. 이때 해남현감 변협만이 성을 굳게 지키고 있었다. 도순찰사 이준경, 전주부윤 이윤경이 군사 3,000명을 영암우방어사 김경양이 와서 구원하고 병사 조안국, 우방어사 남도근이 강진군 작천에 진을 치고 적과 접전하였다. 작천 싸움에서 이윤경이 100여 명을 참수하여 전세가 역전되어 적은 식량을 버리고 퇴각하였다. 또한 기록에는 만호를 강등하여 권관으로 대체하였고, 달량진왜변 후 이진진이 설립됨에 따라 폐진하였는데 대신 이곳에서 남창을 두고 이진진에 만호를 배치하였다고 기록하였다.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에는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도 이 성을 이용하였으며 3일간 체류하였다고 전하며 성은 마을 안길 담장으로 되어 약 500m가 잔존하고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위치]
해남 북평 달량진성은 전라남도 완도로 통하는 북평면 남창리 남창마을 동쪽 해안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해남 북평 달량진성은 발굴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2011년부터 추진된 북평면 종합 정비 사업을 통해 일부 성벽이 남아 있던 달량진성과 유래만 전하던 해월루를 복원하였다.
[현황]
해남 북평 달량진성은 1498년에 건립되어 건립 시기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벽과 북벽의 일부가 남아 있다. 성벽은 내탁법에 의해 구축한 방형이다. 현재 남아 있는 동벽의 경우 높이 330~420㎝, 하부 폭 330㎝, 상부 폭 100㎝, 길이 115m이며, 북벽의 경우 폭 90㎝, 길이 90m이다. 성벽은 25~70㎝의 장방형의 돌로 구축하고, 20~50㎝의 막돌로 쌓아 올렸다. 성벽의 보존 및 관리 상태가 양호하며, 성벽은 모두 민가의 담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성벽 주위에서 청자 및 백자편·잡발 등이 수습되었다.
[의의와 평가]
해남 북평 달량진성은 건립 시기가 오래되었음에도 동벽과 북벽의 일부가 남아 있으며, 성벽의 보존 및 관리 상태가 양호하여 자료적 가치가 있다. 당시 왜구의 침입을 받았을 때 해남현감 변협이 성을 지키게 된 달량진 사변의 주요 무대로 청소년들의 교육 장소로 활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