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7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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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昌奎 |
영어공식명칭 | Jo changgyu |
이칭/별칭 | 성오(聖五),성암(惺庵)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권난희 |
[정의]
근대 함안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가계]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성오(聖五), 호는 성암(惺庵). 어계(漁溪)조려(趙旅)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조정(趙淨)이고, 할아버지는 조중식(趙中植)이다. 아버지는 조성진(趙性軫)으로 나종완(羅鍾完)의 딸 나주 나씨(羅州羅氏), 이경구의 딸 합천 이씨(陜川李氏), 안기원(安驥遠)의 딸 광주 안씨(廣州安氏)를 아내로 맞이했는데, 조창규는 이씨의 소생이다. 부인은 정문부(鄭文孚)의 후손인 정준석(鄭俊錫)의 딸 해주 정씨(海州鄭氏)로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아들은 조용길(趙鏞吉)·조용태(趙鏞泰)이고, 딸은 재령 이씨(載寧李氏)이선호(李善浩)에게 시집갔다. 친손자는 조용길의 아들인 조철제(趙哲濟)이고, 외손자는 이병철(李秉喆)이다.
[활동 사항]
조창규(趙昌奎)[1880~1948]는 약관에 간재(艮齋)전우(田愚)에게 나아가 사사하였고, 이남(夷南)박규환(朴奎煥), 일산(一山)조병규(趙昺奎), 서천(西川)조정규(趙貞奎), 신암(信庵)이준구(李準九) 등과 교유하였다. 1910년 경술 국치 이후로는 세상을 피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친구 10여 명과 수선사 춘추단(守善社春秋團)을 결성하고는 서로 강마하였다. “난세를 만났으니 목숨을 걸고 도를 보존하려는 뜻을 지켜야 한다. 어찌 한순간이라도 마음속에 보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고 친척 및 사림들과 삼충사(三忠祠)에서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 향년 69세로 1948년 1월 7일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저서는 대부분 6·25 전쟁 때 소실되고 1970년 편찬한 5권 2책의 『성암집(惺庵集)』이 있다.
[묘소]
백이산(伯夷山) 아래 발구등[鉢具嶝] 상봉 건좌(乾坐) 언덕에 장사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