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8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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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在輝 |
영어공식명칭 | An Jaehwi |
이칭/별칭 | 인필(仁弼),고봉(高峰),안교흠(安敎欽)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외암리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장혜금 |
[정의]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안재휘(安在輝)[1894~1961]는 자는 인필(仁弼), 호는 고봉(高峰)이다. 안교흠(安敎欽)이라고도 불렸다. 아들 안성호(安晟鎬), 안우호(安祐鎬), 안영호(安永鎬)와 2명의 딸이 있다. 1894년 8월 10일 함안군 여항면 외암리에서 태어났으며, 경제적으로 비교적 윤택한 생활을 하였다. 한문을 10여 년간 수학하여 소양을 갖추었고, 강한 민족의식을 갖고 있다고 평가되었다.
안재휘는 고종의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해 직접 서울로 올라갔다가 독립 시위에 참석하여 독립 선언서를 받아 함안으로 돌아왔다. 서울의 시위 소식을 사촌 형인 안재형(安在瑩), 안재원에게 알리고 동지를 규합하여 1919년 3월 19일 함안 읍내 장날에 만세 운동을 펼치기로 결의하였다. 3월 19일 선두에서 시위행진을 지휘하였고 함안 경찰서·군청·등기소 등을 습격하여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안재휘는 함안읍 만세 운동을 주도한 안지호(安知鎬), 안재형, 안재원 및 안재옥 등과는 모두 가까운 집안이었다. 안재휘는 부산 지방 법원 마산 지청에서 징역 1년 형을 선고 받고 대구 복심 법원에 항소하였지만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1961년 9월 20일 향년 68세로 별세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대통령 표창, 1991년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