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국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870
한자 趙漢國
영어공식명칭 Jo Hanguk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고은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6년 5월 14일연표보기 - 조한국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조한국 함안읍 만세 운동 주도
몰년 시기/일시 1962년 3월 5일연표보기 - 조한국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7년 - 조한국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조한국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조한국 함안읍 만세 운동 주도
출생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거주|이주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활동지 경상남도 함안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함안읍 의거는 서울의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돌아온 조한휘(趙漢輝)·한종순(韓鍾淳)·이찬영(李讚榮) 등이 대산면에 사는 안지호(安知鎬)와 3월 19일 함안읍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면서 거행되었다. 3월 19일 정오, 읍내 봉성동에서 수백 명의 군중이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오후 2시 3,000여 명의 군중은 경찰 주재소로 시위행진하였다. 마산 경찰 서장과 현지 경찰이 출동하여 무력 진압하려 하자 군중은 주재소의 공문서와 건물을 파괴하였다. 그들에게는 독립 만세를 외치라고 요구하였다. 또한 군중은 등기소·우편소·일본인 소학교로 시위행진하여 건물도 파괴하였다. 하지만 마산 중포병 대대 병력 16명이 도착, 현지 경찰과 합세하여 주동자를 검거하며 함안읍 만세 운동은 끝이 났다.

[활동 사항]

조한국(趙漢國)[1896~1962]은 1896년 5월 14일 함안군 함안면 봉성동에서 태어났다. 함안 공립 보통 학교를 졸업하고, 양말 제조업을 하다가 1919년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을 주동하였다. 형인 조한휘에게서 거사 소식을 듣고 의거 준비 과정에서 한종헌(韓鍾憲), 김도권과 태극기를 제작하는 책임을 지고 수천 장을 만들었다. 의거 당일 선두에 서서 시위 군중을 지휘하였다. 일본 순사 부장이 작성한 조한국에 대한 범죄인 소행 조서에 "함안 공립 보통 학교를 졸업하고 양말 제조업을 하고 있으며, 계통적으로 배일 사상을 지녔고, 이번 사건에도 형제가 함께 시위에 가담하였다"라고 하였다.

또한 재판 기록을 통해서도 조한국의 활동을 알 수 있다. 재판장은 "함안면 소요 시 군중을 선동하고 소학교를 향해 돌을 던졌다"라고 판시하였다. 또한 노리도미[乘富] 보통 학교장은 "오후 3시 40분경 400여 명의 폭도가 전후 4회에 걸쳐 학교에 밀려들어 만세를 외치면서 학생들에게 시위 운동에 가담할 것을 종용하고 교실에 침입하여 교구와 유리를 파손하였는데 조한국도 그 군중 속에 있었다"라고 증언하였다. 조한국은 체포되어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 받았다. 1962년 3월 5일 66세로 작고하였다. 독립운동가 조한휘가 형이고, 아들은 조정래(趙汀來)이다.

[상훈과 추모]

1977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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