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4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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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福順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희태 |
[정의]
1407년에서 1416년까지 있었던 전라남도 화순 지역의 옛 행정 구역.
[개설]
1407년(태종 7년)에 동복현과 화순현을 합치며 한 글자씩 따서 복순현으로 부르다가 10년 후인 1416년(태종 16)에 복순현을 다시 화순현으로 고쳐 불렀다. 동복현의 관할은 지금의 화순군 동복면·이서면·사평면·백아면 지역이고, 화순현의 관할 지역은 지금의 화순군 화순읍과 동면 지역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조선 시대 고을의 폐치 분합 조치에는 여러 가지 사유가 있었다. 전란으로 인한 폐해, 충효열을 어긴 인물이 출생한 곳이나 충효열을 어긴 사건이 있는 곳, 향교의 전패가 훼손되는 경우 등이다. 두 고을을 합치거나, 한 고을을 강등하거나 없애 버리고 다른 고을에 분속해 버리는 경우 등이 있었다.
조선 초에 동복현과 화순현이 복순현으로 통합된 정확한 사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양 고을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1407년 복순현으로 개칭하기 직전인 1405년(태종 5)에 동복현을 혁파하여 화순현에 합속하였다가, 3년이 지나 1407년(태종 7)에 다시 복순현으로 개칭한 점이 주목된다.
동복현 쪽에 문제가 있어 동복현을 혁파하고 화순현에 합했다가 뒤에 다시 복순현으로 개칭하면서 동복현의 명칭 가운데 한 글자인 복을 앞자리에 두었다. 충효열을 어긴 사건이 아니고 지방 군현 통치의 편의상 합속하면서 고을 규모가 더 작은 동복현을 혁파해 화순현에 합하였는데 동복현의 반발이 있자 동복현의 복을 먼저 사용한 복순현이라는 고을 이름으로 고친 듯 싶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따르면 그 당시 호구 수는 화순현이 209호(戶) 615구(口), 동복현이 90호 289호였다.
[관련 기록]
『세종실록지리지』 전라도 화순현조에 “태종 5년 을유에 동복현을 혁파하여 본현 화순에 합속하고 화순 감무라고 칭하였고, 3년이 지나 정해[1407년]에 복순이라 개칭하였고, 16년[1416년] 병신에 이르러 다시 동복을 나누어서 본 현을 능성에 합속하여서 순성현이라 칭하였다[太宗五年乙酉 革同福縣 合屬于本縣 稱和順監務 越三年丁亥 改稱福順 至丙申 復分同福 以本縣合屬于綾城 稱順城縣].”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같은 책 동복현조에는 “태종 5년 을유년(1405)에 현을 화순에 합쳐서 복순이라 개칭하였고, 태종 16년(1416) 병신에 다시 동복으로 하였다[太宗五年乙酉 以縣合于和順 改稱福順 十六年 丙申 復爲同福縣].”라고 기록되어 있어 내용이 약간 다르다. 화순현조에서는 1405년(태종 5)에 동복현이 혁파되어 화순현에 합속되었다가 1407년(태종 7)에 복순현으로 개칭한다는 기록인데, 동복현조에서는 1405년에 복순현으로 개칭했다는 내용이다.
이보다 뒷 시기에 만들어진 『신증동국여지승람』 화순 건치 연혁조에는 “태종 5년[1405]에 동복을 없애고 본 현[화순]에 합쳐 소속시키고 화순 감무라고 칭하였다. 7년(1407)에 복순으로 고치고 16년(1416)에 다시 동복을 쪼개서 본현을 능성에 합쳐 소속시켜 순성이라고 일컬었다[太宗五年 省同福 合屬于本縣 稱和順監務 七年 改稱福順 十六年 福析同福 以本縣合屬于綾城 稱順城].”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같은 『신증동국여지승람』 동복 건치 연혁조에는 “태종 5년[1405]에 이 현을 화순에 합치고 복순이라고 고쳤으며, 16년(1416년)에 각각 복구해서 예에 의하여 현감으로 하였다[太宗五年 以縣合于和順 改稱福順 十六年 各復舊 例爲縣監].”라 하였다.
위의 기록 또한 『세종실록지리지』처럼 화순조에서는 1405년 동복 혁파 화순 합속, 1407년 복순 개칭이라고 되어 있으나, 동복조에서는 1405년 복순 개칭으로 기록되어 있다. 동복과 화순의 혁파·합속·개칭은 서로 차이가 있으나 동복과 화순이 다시 분리되는 것은 1416년(태종 16)으로서 『조선왕조실록』에서도 확인된다.
『태종실록』 권32 태종 16년 10월 무진(戊辰) 기사조에 따르면 “다시 용안·함열·동복에 현감을 두고, 부령·보안을 합하여 부안현으로 하고, 화순·능성을 합하여 순성현으로 하였다[復置龍安 咸悅 同福縣監 倂扶寧 保安爲扶安縣 和順 綾城爲順城縣]”라고 기록되어 있다. 기록들을 정리해 보면 1405년 동복현을 혁파하고 화순현에 합속, 1407년 복순현으로 개칭, 1416년 동복현 복설로 보아야 할 것 같다. 통상적으로 폐치 분합의 경우 10년이 지나면 복구되기 때문이다.
[내용]
1405년(태종 5)에 동복현이 혁파되면서 화순현에 합속되어 화순 감무가 겸임하고, 1407년(태종 7)에 동복현과 화순현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서 복순현(福順縣)이라 개칭하였으며, 10년 만인 1416년(태종 16)에 다시 동복현이 복구되었다. 화순현은 다시 능성현과 합해져 두 고을에서 한 글자씩 딴 순성현(順城縣)으로 개칭되었다.
동복현은 백제 시대에는 두부지현(豆夫只縣)이라 하다가 757년(경덕왕 16)에 동복현으로 고쳐 불렀다. 동복현은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이서면·사평면·백아면 지역이 관할 영역이었고 치소는 동복면에 있었다. 구성(龜城)·옹성(瓮城)·복천(福川)·나복(蘿葍) 등의 별호가 있었다.
화순현은 백제 시대에는 잉리아현(仍利阿縣)이라 하다가 757년(경덕왕 16)에 여미현(汝湄縣)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시대에 들어와 940년(태조 23)에 화순현으로 고쳐 불렀다.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이서면 일부 지역이 관할 영역이었고 치소는 화순읍에 있었다. 여빈(汝濱)·해빈(海濱)·오성(烏城)·산양(山陽)·서양(瑞陽)의 별호가 있었다.
[변천]
복순현(福順縣)이라 개칭하고 10년 만인 1416년(태종 16)에 다시 동복현이 복구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 초기에 10년간 사용된 고을명으로 동복현과 화순현의 역사적 변천을 알 수 있어 전라남도 화순군의 역사 지명 자료로서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