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6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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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和順孝山里-大薪里支石墓群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 모산 마을|춘양면 대신리 지동 마을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이영문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8년 9월 17일 - 화순 효산리와 대신리 지석묘군 사적 410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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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화순 효산리와 대신리 지석묘군 사적 재지정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9년 12월 20일~1999년 3월 20일 - 화순 효산리와 대산리 지석묘군 목포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
문물 지정 일시 | 2000년 12월 2일 - 화순 효산리와 대신리 지석묘군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3년 11월 1일~2003년 12월 15일 - 화순 효산리와 대산리 지석묘군 동북아 지석묘 연구소에서 발굴 조사[2003]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4년 4월 12일~2004년 6월 11일 - 화순 효산리와 대산리 지석묘군 동북아 지석묘 연구소에서 발굴 조사[2004]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5년 1월 24일~2005년 3월 9일 - 화순 효산리와 대산리 지석묘군 동북아 지석묘 연구소에서 발굴 조사[2005]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6년 9월 27일~2006년 11월 10일 - 화순 효산리와 대산리 지석묘군 동북아 지석묘 연구소에서 발굴 조사[2006]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3년 4월 11일~2013년 7월 9일 - 화순 효산리와 대산리 지석묘군 동북아 지석묘 연구소에서 발굴 조사[2013] |
소재지 | 화순 효산리와 대신리 지석묘군 -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춘양면 대신리 |
성격 | 고인돌|채석장 유적 |
양식 | 기반식|탁자식|개석식 |
문화재 지정 번호 | 사적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위치]
고인돌은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를 잇는 보검재 계곡 일대에 걸쳐 있다. 효산리 고인돌군은 보검재[188.5m] 산기슭에서 모산 마을 앞까지 높이 45~90m 사이에 모두 7개 군으로 나누어 분포되어 있다. 대신리 고인돌군은 보검재에서 지동 마을로 뻗어있는 산기슭[70m~120m]으로 1㎞에 걸쳐 모두 6개 군으로 나누어 분포하고 있다. 구릉의 끝자락으로 해발 70m 이하에는 지동 마을이 있고, 마을 안과 주변 농경지 등에도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효산리 고인돌과 대신리 고인돌은 1995년 목포 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능주목 학술 조사 과정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세계 문화 유산 추진 과정에서 1998년 9월 17일 국가 사적 410호로 지정되었고, 같은 해에 효산리 고인돌 군과 대신리 고인돌 군에 대한 정밀 지표 조사가 목포 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실시되었다.
보검재를 사이에 둔 계곡 사이에 13개군 596기의 고인돌이 분포한 것으로 밝혀졌고, 1999년과 2003년에는 목포 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채석장이 위치한 감태 바위 고인돌 군과 통행로 주변의 고인돌 5개소를 발굴하였다. 이 조사 결과를 근거로 전라북도 고창군과 인천광역시 강화군 고인돌과 함께 2000년 12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 후로도 계속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는데, 2004년·2005년·2006년·2013년 등 4차례에 걸쳐 3개소의 고인돌 군, 선사 체험장 부지, 핑매 바위 고인돌과 그 위 채석장, 태풍 피해 고인돌 이외 화순 고인돌 연구 교육 센터 부지와 선사 마을 조성 부지 등에 대해 동북아 지석묘 연구소에 의해 발굴이 이루어졌다.
[형태]
‘괴바우[고양이 바위]’ 고인돌은 원래 5개의 받침돌이 고인 전형적인 기반식 고인돌이며, 길이 530m, 폭 360m, 두께 300㎝인 초대형 덮개돌이다. 규모가 크고 잘 정제되어 있으며, 약간 높은 대지상에 조성한 점은 무덤이라기보다는 제단적 성격이 강한 느낌을 준다.
관청 바위 고인돌은 대형들이 가장 많고 밀집되어 있어 효산리 고인돌을 대표한다. 가장 규모가 큰 것은 받침돌 외에 남쪽 면에서 돌을 구획하여 깐 구획석이 확인되었다. 달바위 고인돌은 가장 큰 달바위 고인돌이 한쪽에 치우쳐 있고 작은 고인돌들이 산비탈을 가로질러 열 지어 있다. 달바위 고인돌은 길이 556㎝, 폭 396㎝, 높이 198㎝이며 고임돌이 6개 받치고 있는 전형적인 기반식 고인돌이다.
핑매 바위 고인돌은 세계 최대 규모급에 속하며, 길이 7m, 무게 200톤이 넘는 이 거대한 덮개돌은 덮개돌의 아랫면을 다듬은 흔적이 뚜렷하고, 그 밑에 받침돌이 돌려져 있으며 덮개돌 아래 부분에 일정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감태 바위 고인돌은 탁자식, 기반식, 개석식이 군집을 이루고 있고, 개석식 고인돌에서 완형의 간돌검이 발굴되었다. 채석장에서는 아가리 부분에 삼각문과 점열문이 있는 토기가 출토되어 전기 청동기 시대에 속한다. 이는 암벽에 대한 신앙 또는 제의 행위에 대한 산물로 추정된다.
마을 앞 고인돌[보호각으로 보호되고 있음]은 30여 기 이상이 군집을 이루고 있고, 깬돌을 쌓아 무덤방을 축조한 것이 많지만 판석을 짜맞춘 것도 있고, 받침돌만 있는 것도 있다. 일부 고인돌 주변에는 납작한 돌을 한겹 깔아 묘역을 형성한 것 등 매우 다양한 무덤방 구조를 보여준다. 이곳에서 측정된 과학적 연대는 기원전 555년과 770년으로 나왔다.
[출토 유물]
유물은 부장 유물로 슴베식 간돌검[유경식 석검], 가락 바퀴[방추차] 등과 함께 무덤방 주위에서 간돌 화살촉[석촉], 돌끌[석착], 턱자귀[유단석부], 간돌검편, 다량의 무문 토기편, 적색 마연 토기[홍도]편 등이 있다. 2013년에는 감태 바위 고인돌에서 슴베식 간돌검이 완형으로 출토되었다.
[현황]
1998년 9월 17일 사적 제41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또한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어 잘 관리되고 있다. 대표적인 고인돌들은 발굴 조사하여 고인돌 주변에 잔디를 식재하여 정비하였지만 후대에 훼손되거나 도괴된 고인돌들은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그리고 고인돌인지 확인되지 않는 것들은 숲속에 남겨져 있다. 이에 대한 조사와 함께 정비 복원 계획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대형 안내판과 각 고인돌에 대해 개별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화순 지역 고인돌이 세계 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는 먼저 산 계곡을 따라 고인돌이 무리지어 분포되어 있고, 사람의 힘으로 축조가 불가사의한 고인돌의 존재이다. 또한 고인돌 덮개돌을 떼어낸 채석장이 인근에 있어 고인돌을 축조할 수 있는 천혜의 지형이 구비된 곳이며, 고인돌의 여러 형태들이 한 곳에서 나타나는 살아 있는 교육장이기 때문이다. 한편 고인돌 축조 당시의 비교적 옛 모습대로 잘 보존되어 있고, 산 위쪽에 웅장한 암반들이 형성되어 있는 등 자연 환경과 어우러진 자연속의 고인돌이라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화순 지역 고인돌의 특징은 좁은 지역 안에 596기의 고인돌이 밀집 분포를 보이고 있으며, 규모에서도 100톤 이상의 커다란 바둑판식 고인돌 수십 기가 있다. 고인돌의 형태에서도 여러 매의 판석을 땅 위에서 짜 맞춘 탁자식, 바둑판 형태의 기반식, 받침돌이 보이지 않는 개석식 등 다양한 형식이 공존하고 있다.
화순 지역 고인돌에는 고인돌 채석 과정에서부터 축조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채석장과 함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또한 고인돌에는 다양한 명칭과 전설이 전해오고 있어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염원 등 거석 신앙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