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665
한자 古墳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집필자 이영문

[정의]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 분포하는 삼국 시대 이전 시기의 무덤.

[개설]

고분은 일반적으로 옛 무덤이란 뜻이지만 고고학에서는 봉분을 조영하기 시작한 삼국 시대의 무덤을 칭한다. 그 이전은 분묘라 통칭하고 있다.

화순 지역 서쪽에는 영산강 지류인 지석천이 흐르고 있고, 동쪽에는 보성강 지류인 동복천이 흐르고 있다. 이 하천들은 영산강 상류 지역과 보성강의 상류 지역에 해당하며, 양 지역 문화 교류를 추론할 수 있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지석천은 능주 지역에서 화순천과 합류하면서 길이 7.5㎞, 너비 1.5~2㎞에 달하는 넓은 충적 평지를 형성한다. 여기에서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면 쪽으로 흘러 영산강 본류와 만나 넓은 나주 평야를 관류하여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서해로 흘러든다. 화순 지역에서 고분은 주로 지석천과 그 지류에서 발견되고 있다.

화순 지역 고분은 발굴 조사 과정에서 위석식 토광묘나 옹관묘가 발견되기는 하였지만 대형 고총·고분에 대해서는 2000년 이전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화순 지역의 선사 시대 분묘는 보통 고인돌로 대표되지만 초기 철기 시대의 돌무지나무널무덤[적석 목관묘]이 1971년 대곡리에서 발견되었고, 원삼국 또는 마한 시기 분묘로 알려진 위석식 토광묘·옹관묘·주구묘가 1989년 이후 계속 발굴되고 있다. 삼국 시대의 대형 고분은 1996년 천덕리 회덕원지리 원지 고분이 보고된 이후 2000년 분구 측량 조사와 2005년 조사에서 6개 지역에서 8기가 확인되었다. 그 후 2009년 내평리에서 분구묘 12기와 미 조사된 고분 1기가 더 확인되어 적어도 10여 기에서 20여 기의 대형 고분이 분포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전라남도 내륙 영산강 상류 지역에 밀집된 대형 고분이 분포하고 있는 점은 고대에 지석천 일대가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시사한다. 이는 능주 지역이 마한의 여러 소국 가운데 여래비리국(如來卑離國) 또는 내비리국(內卑離國)으로 비정되고 있는 점과 백제의 영역에 들어간 뒤 이릉부리군(爾陵夫里郡)을 두었다는 역사 기록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인다. 이 고분들은 역사 기록을 뒷받침해 주는 고고학적 자료 중 하나이다.

[고분의 종류와 변천]

화순 지역의 고분은 주로 지석천과 그 지류 주변에서 발견되거나 조사되고 있다. 고인돌과 고총의 대형 고분 이외는 지상에 아무런 표시물이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에 발굴을 통해서 확인되고 있으며, 앞으로 여러 곳에서 계속 발견될 가능성이 많다. 화순 지역 고분의 구조나 출토 유물을 통해 시대별 추이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초기 철기 시대의 무덤은 돌무지널무덤과 토광묘가 있지만 많지 않다. 돌무지널무덤으로는 국보 제143호로 지정된 도곡면 대곡리능주면 백암리 고분이 있다. 대곡리 고분은 풍화된 자연 암반에 상하 2단의 묘광을 파내서 동서 230㎝, 남북 105㎝, 깊이 65㎝의 평면 장방형의 묘광을 마련하였다. 묘광 하부에 길이 180㎝, 너비 60㎝의 통나무 목관으로 보아, 이 무덤은 토광을 파고 통나무 관을 안치한 다음 그 공간을 깬 돌로 메우고 그 위에 깬 돌을 쌓아 만든 무덤이다. 출토된 청동 유물은 동검 5점, 팔주령 2점, 쌍두령 2점, 새기개 1점, 도끼 1점, 잔무늬 거울 2점으로 모두 6종 13점이다.

백암리 돌무지널무덤은 대부분 파헤쳐진 상태이나 황갈색 사질 마사토층을 깊이 146㎝ 정도로 파고, 목관을 안치한 다음 깬 돌로 뒤채움과 돌무지로 덮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물은 동검편 3점, 청동꺽창(銅戈) 1점, 잔무늬거울 1점, 삼각화살촉 1점, 대롱옥편 3점, 흑색마연토기편 등이 있다.

초기 철기 시대에 속한 토광묘는 화순군 화순읍 내평리에서 1기만 확인되었는데, 길이 227㎝, 너비 89㎝, 깊이 42㎝의 장방형 묘광 안에 목관을 안치하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물은 바닥에서 흑도 장경호와 원형 점토대 토기가 부장되어 발견되었다. 이 시기의 무덤은 구릉 정상부와 그 사면 입지로 구릉과는 직교된 방향이며, 철기가 유입되고 확산된 시기인 기원전 3-2세기 전후부터 조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원삼국 시대 즉 마한 시기로 보는 고분은 토광묘·옹관묘·주구묘·분구묘 등이 있다. 이런 고분 유형은 영산강 유역에서 집중 발견되어 그 중심을 이루고, 북으로 전라북도, 충청남도와 충청북도 지역, 경기도에 이르는 서해안 지역에서 발견된다. 화순 지역에서 도암면 용강리화순읍 연양리에서 영산강 유역과 같은 옹관묘가 조사되었고, 그 후 화순읍 내평리도암면 용강리에서 토광묘을 비롯해 옹관묘와 주구묘가 군집을 이루며 조사되었다.

최근 이양면 품평리 조사에서도 주구묘와 토광묘가 공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내평리에서 발굴된 분묘는 토광묘 12기, 옹관묘 10기[타 분묘 배장 6기 포함], 주구묘 18기, 분구묘 12기이다. 용강리에서 조사된 분묘는 토광묘 17기, 옹관묘 3기, 주구묘 5기가 발굴되었다.

삼국 시대 고분으로는 내평리 원형분을 비롯하여, 백암리 고분, 화순군 동면 천덕리 고분, 화순군 능주면 관영리 고분, 화순군 능주면 원지리 원지 고분, 화순군 도곡면 쌍옥리 옥계 고분,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 모산 석실분 등 7개 지역에서 10여 기 이상이 확인되었다. 이 중 내평리효산리 모산 석실분만 발굴 조사되었고, 나머지는 지표 조사로 발견 보고되었으며, 일부 고분은 측량되어 있다.

고분의 분포는 지석천 변과 그 지류인 화순천 변으로 고대의 중심지인 능주 지역을 기점으로 멀게는 5㎞ 내외에서 2㎞ 안에서 발견되었다. 고분의 평지 입지는 원지리 원지 고분관영리 고분이 지석천 변의 충적 평지에 위치하며, 그 외 고분은 구릉이나 산기슭에서 평지로 이어지는 구릉 말단부에 입지하며, 주변의 충적 평지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군집은 천덕리 회덕 고분을 제외하고 모두 단독으로 입지해 있다.

고분의 평면 형태는 방형과 원형으로 나뉘어지는데, 원형이 대부분이다. 방형은 천덕리 회덕 1·2호분으로 한변 길이가 각각 25m와 30m 정도이다. 고분 정상부에는 평탄면이 형성되어 있어 방대형(方臺形)[평면 방형에 정상부가 잘린 형태]으로 추정된다. 원형은 원대형(圓臺形)과 반구형(半球形)으로 구분되는데, 원대형은 천덕리 회덕 3호분과 천덕리 고분으로 위가 평탄면을 이루고 있다. 반구형은 내평리·백암리·관영리 고분으로 정상부에 평탄면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 크기는 직경 20m 내외이다. 이외 원지리 원지 고분은 타원형으로 길이 50m, 너비 42m, 높이 9.5m로 다른 고분에 비해 규모가 훨씬 크며, 주위에 자연석이 노출되어 있어 자연 동산으로 보기도 한다. 쌍옥리 옥계 고분은 주변의 삭토가 심하여 전체적으로 삼각형을 띠고 있어 정확한 평면 형태를 알 수 없지만 원형으로 추정하고 있다.

매장 주체부는 발굴 사례가 두 예밖에 없어 전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내평리 고분은 할석들로 채워져 있어 도굴에 의해 훼손된 것인지 원래 어떤 목적에 의해 그러한 것인지 자료의 증가와 검토가 필요하다. 효산리 모산 고분은 봉분이 유실되었지만 장대석으로 돌방을 축조한 백제의 석실분[돌방무덤]이다. 그리고 천덕리 회덕 3호분에 석재들이 일부 노출되어 있어 석실일 가능성이 크다.

고분에서 봉분에 돌을 깔아 덮은 즙석 시설은 내평리 고분에 봉분 아래쪽에서 확인되었고, 백암리천덕리 회덕 3호분에서도 그 흔적이 있다. 고분 주위에 도랑을 돌린 주구시설은 내평리 고분에서 확인되었고, 천덕리 회덕 2·3호분에서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출토 유물은 발굴되지 않아 많지 않지만 내평리 고분 10호에서 그릇 받침[器臺], 뚜껑 접시[蓋杯], 꼭지 달린 개, 굽달린 접시[高杯]가, 11호에서 개배 3세트, 곱은옥[曲玉] 1점. 대롱 옥[管玉] 2점, 소옥 34점, 쇠 창[鐵矛] 등이 있다.

효산리 모산 고분 출토 유물은 2003년에는 짧은 목 단지 1점, 뚜껑 접시[蓋杯] 7점, 쇠 손칼[鐵刀] 1점, 쇠 대도[鐵劍] 1점, 금제 귀걸이[耳飾] 1점, 은제 귀걸이 2점, 곱은 옥 1점, 대롱 옥 1점, 소옥 175점이, 2013년에는 소옥 21점, 뚜껑접시 1점, 철제편 1점이 추가로 출토되었다.

백암리 고분에서는 원통형 토기[墳周土器], 와형 토기, 고배 대각편, 개배 편, 기대 편 등이 채집되었다.

[고분의 연대]

초기 철기 시대 분묘는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 전후로 보고 있다. 원삼국 시대 분묘 유적은 주구묘에서 분구묘로의 변화 과정이 확인되고 있어 화순 지역 분묘의 변화 양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시기의 분묘 연대는 전체적으로 3~5세기가 중심인데, 토광묘는 4세기 대, 옹관묘는 3세기 후엽부터 4세기 대, 주구묘는 4세기 이전인 3세기 대에 시작하며, 제형분은 3세기 후반 4세기가 중심이고, 원형분은 4세기 후반에서 5세기까지로 편년되고 있다. 봉분이 있는 고분은 효산리 모산 고분백암리 고분으로 보아 6세기 전반으로 보기도 한다.

화순 지역의 분묘와 고분의 군집상 변화는 초기 철기 시대는 단독으로 구릉 정상부나 그 사면에서, 원삼국 시대[마한]는 다양한 묘제들이 공존하면서 하나의 묘역을 형성하고 있으나 삼국 시대에 오면 평지와 만나는 구릉 상이나 그 말단부에 1기만 단독으로 조성된 것이 특징적이다.

[현황]

화순 지역 고분은 문화재로 지정된 천덕리 회덕 고분관영리 고분은 잘 관리되고 있지만 회덕 고분의 경우 인접된 민가와 민묘가 조성되어 있다. 봉분이 유실된 효산리 모산 고분은 세계 유산 지역 안에 있어 발굴 조사 후 복원 정비 계획으로 있으며, 내평리 생물 의학 단지 내 녹지 공간에 발굴되지 않는 고분도 잘 관리되고 있다. 하지만 경작으로 인한 고분의 삭토와 민묘 조성으로 훼손된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