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0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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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邢運昌 |
이칭/별칭 | 인화(仁和),죽제(竹堤)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만호 |
활동 시기/일시 | 1593년 - 형운창 의병 활동[15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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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97년 - 형운창 의병 활동[1597] |
몰년 시기/일시 | 1597년 7월 - 형운창 사망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 |
[정의]
조선 후기 정유재란 때 순절한 화순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인화(仁和), 호는 죽제(竹堤). 병사(兵使) 형군철(邢君哲)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형응희(邢應禧)이다.
[활동 사항]
형운창(邢運昌)[?~1597]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후 1593년(선조 26)에 거의(擧義)하여 남아 있는 왜병을 소탕하여 고을을 안정시켰다. 1597년(선조 30)에 다시 창의하여 전라 우수사(全羅右水使) 이억기(李億祺)의 막하로 들어가 안골포(安骨浦)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하지만 1597년 7월 칠천량 해전에서 동향(同鄕) 출신인 이후남(李厚楠)과 함께 순절하였다.
[상훈과 추모]
1593년(선조 26)의 전쟁에서 공을 세워 주부(主簿)를 제수 받았다. 사후에는 훈련원(訓練院) 부정(副正)으로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