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6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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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敎育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덕진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개설]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는 조선 시대에 국립 교육기관으로서 화순 향교(和順鄕校), 능주 향교(綾州鄕校), 동복 향교(同福鄕校)가 있어 유교 교육의 진작과 지방 문화의 발달에 기여하였다. 또한 사립 교육 기관으로 죽수 서원, 도원 서원, 해망 서원에서 지역 유림을 양성하였다.
현재 화순의 교육은 소통과 협력으로 참되고 창의적인 글로벌 인재 육성에 힘쓰고 있다.
[전통 교육]
화순군의 교육에 관해 기록상 나타나는 것은 조선 시대부터이며, 교육 기관으로 향교(鄕校), 서원(書院), 서당(書堂)이 있다. 관학 기관인 향교로는 화순 향교, 능주 향교, 동복 향교가 있는데, 이들 기관은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사여 받아 교관이 지방민들에게 국가의 이념을 가르침으로써 유교를 조선 사회의 전통 이념으로 확립시키고 생원·진사 시험을 통해 중앙 정치권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사설 교육 기관인 서원이 발달하였는데 화순 지역에는 죽수 서원(竹樹 書院), 도원 서원(道源 書院), 해망 서원(海望 書院)이 있었다. 죽수 서원은 조광조(趙光祖)와 양팽손(梁彭孫)을, 도원 서원은 최산두(崔山斗)와 임억령(林億齡)을, 해망 서원은 김종직(金宗直)·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정여해(鄭汝諧)를 추모하며 그들의 학문과 덕행을 본받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렇게 서원은 학문 연구와 선현 제향을 위한 기관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향촌의 자치 운영 기구 역할도 하여 향촌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의견을 교환하고 해결책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조선 말기에는 서원이 여러 가지 폐단을 낳자 결국 흥선 대원군은 대다수의 서원을 철폐하였다.
서당은 사설 교육 기관으로 화순의 경우 연동 서당, 반용재, 영귀정, 죽림재, 운포재, 수산 정사, 인산재, 영모재, 도남재, 서운재, 용호재, 죽호재, 인산 정사, 백암 정사, 매계 정사, 부춘 정사, 학포당, 행여재, 명학재, 주산 정사, 우산 정사 등이 있었다. 18세기 후반에는 문중에서 서당을 설립하면서 서당이 혈연 중심의 폐쇄적인 성격으로 변모하였고, 평민 중심의 교재가 선보이는 등의 변화가 나타났다.
[근대 교육]
19세기 후반 신식 관립 학교와 선교 단체의 신식 학교 등이 생겼으나 도덕성의 함양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교육 관념은 바뀌지 않았다. 갑오개혁 이후 1895년 고종 황제의 ‘교육 조서’에 따라 실용과 과학적 학문을 신교육으로 명시하면서 여러 교육 제도와 체제가 도입되었다.
화순 지역 최초의 근대식 학교로는 1908년에 설립된 능주 육영 보통학교[능주 초등학교]와 1909년 설립된 사립 동진 학교[동복 초등학교]가 있다. 1911년 일제의 「사립학교 규칙」에 따라 보통학교가 설립되면서 화순 공립 보통학교[화순 초등학교]가 개교하였다. 1934년 교육 시설의 부족으로 조선 총독부에 의해 「간이 학교 설치에 대한 통첩」이 공포되면서 화순에서도 주산 간이 학교 등이 설립되었다. 그러나 1938년 2차 「조선 교육령」이 발표되면서 조선의 교육은 식민지 역할에 충실한 인재를 기르는 기능이 더욱 강화되었다.
[현대 교육]
미군정기에는 조선 교육 심의회가 ‘홍익인간’을 교육 이념으로 결정하고, 건전한 국민 품성의 도야, 인류 문화에의 공헌, 국민 체위 향상 등을 교육 방침으로 제시하였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교육법」을 통해 홍익인간과 민주주의의 교육 이념을 명시하면서 신생 독립 국가로서 교육의 이념과 방향을 제시하였다.
1960년대 이후 제3 공화국[1961~1972]은 경제 성장 제일주의를 표방하여 경제 성장을 주도하는 인력 개발을 교육 이념으로 삼았다. 1980년대에는 제5 공화국[1981~1987]에서 전인 교육, 정신 교육, 과학 교육, 평생 교육 등의 정책을 추진하였으며, 「유아 교육 진흥법」이 공포되면서 화순 지역에도 병설 유치원이 생기기 시작했다. 제6 공화국에서 교육의 본질 추구, 교육의 민주화 추진, 교육 기회의 확대 등의 정책을 추진하였고, 문민 정부[1993~1998]는 정보화·세계화 시대를 대비한 교육에 역점을 두었으며, 국민의 정부[1998~2003]는 수월성, 경쟁과 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교육 정책을 실시하였다.
하지만 화순군의 경우 1960년대 이후 계속된 이촌 향도 현상과 정부의 가족계획 정책으로 인구가 감소하였고, 1980년대 후반부터는 탄광 폐광 등의 영향을 받아 학생 수가 감소하여 학교가 통폐합되거나 폐교되었다.
화순군에는 1952년 화순 교육 구청이 설치되었다. 이후 1962년 교육 자치제를 폐지함에 따라 화순 교육 구청이 해체되고 화순군청에서 교육 업무를 담당하였다. 그러나 1963년 교육 자치제가 부활되자 1964년 화순군 교육청이 설치되었고, 2010년 화순 교육 지원청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2013년 현재 화순 교육 지원청은 “꿈을 키우며 나눔을 실천하는 행복한 화순 교육”을 비전으로, “소통과 협력으로 참되고 창의적인 글로벌 인재 육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화순군에는 2013년 4월 기준 유치원 19개, 초등학교 17개, 중학교 10개, 고등학교 4개가 있다. 한편 2009년 화순군은 화순 군수가 이사장을 맡는 화순 장학회를 설립하고, 성금을 받아 지역의 인재 육성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