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8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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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細良里細良堂山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세량리 세량 마을 |
집필자 | 서해숙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세량리 세량 마을에서 매년 음력 2월 초하룻날에 거행되는 마을 공동 제의.
[개설]
화순군 화순읍 세량리 세량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2월 초하룻날에 할머니 당산에서 당산제를 지낸다. 마을 사람들은 공동으로 제비를 마련하며, 마을 회의를 통해 선정된 유사가 제물을 장만한다. 당산제는 제일 오전에 할머니 당산에 간단히 제물을 진설하고 유교식 제차에 따라 거행된다.
[연원 및 변천]
세량 마을 당산제는 400여 년 전 전주 이씨 이정윤이 입향한 이래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과거 마을에 전염병이 돌거나 환자가 생길 때 당산에 빌면 쉽게 나았다고 한다. 당산제는 해방 전까지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지냈는데, 6·25 전쟁 이후에는 마을 사람들이 제비를 갹출하여 이 마을에 사는 이화자에게 맡겼다. 그러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이화자가 마을 사람들의 제비 지원을 받지 않고 단독으로 1991년까지 지냈다. 현재는 웃촌[웃똠]과 아랫촌[아래똠]이 1년씩 돌아가면서 제를 지내고 있는데 정월 대보름에 지내는 것이 번거롭다고 하여 모두가 쉬는 2월 초하룻날로 옮겨 지내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당산제는 마을 입구 언덕에 위치한 ‘할머니 당산’에게만 지내고 있다. 마을 위쪽 오른편에 ‘할아버지 당산’이라 부르는 할머니 당산과 비슷한 수령의 느티나무가 서 있으며 당산 나무 주위에 인공으로 제단을 쌓은 석축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할머니 당산을 오르는 길에 ‘세량리 장승’이라 부르는 석장승이 있었으나 1998년 마을 앞으로 포장도로가 날 때 묻었다고 한다.
[절차]
당산제 지내는 날인 2월 초하룻날 아침이 되면 마을 회관에서 유사가 중심이 되어 제물을 준비한다. 제물을 준비하는 동안 유사나 그를 돕는 이는 되도록 말을 하지 않고 제물의 맛을 보지 않는다. 이렇게 제물을 하나하나 준비하는 동안 제관들은 유사가 꼬아놓은 새끼에 한지를 끼운 후 제당에 올라가 당산 나무에 감긴 작년의 금줄을 걷어내고 새 금줄을 두른다. 금줄을 다 두를 시간이 되면 유사가 제물을 머리에 이고 제장으로 나르는데 이를 마을 사람들이 도와준다. 제물을 제장에 모두 운반하면 제복을 갖추어 입은 제관들이 할머니 당산 아래 마련된 제상에 한지를 깔고 진설을 한다.
제사의 순서는 유교식으로 진행되는데, 먼저 헌관이 분향을 한 후 재배를 하고 술잔을 올린 후에 다시 재배를 한다. 이렇게 헌관의 재배가 끝나면 축관이 독축을 하고 재배를 한 후 술잔을 올린다. 이어 아헌과 종헌을 한 후 소지를 한다. 소지는 축문을 사르는 게 아니라 미리 준비한 한지를 사용하는데 소지를 하는 동안 마을의 안녕과 금년 농사의 풍년을 기원한다.
소지를 마친 헌관이 제물을 조금씩 떼어 한지에 싼 후 단 위에 있는 할머니 당산나무 아래 놓여있는 돌을 들추어내 제물을 묻고 황토로 덮은 후 다시 돌을 올려놓는 것으로 당산제를 모두 마친다. 이렇게 제를 마치면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던 유사와 마을 사람들이 철상한 제물을 다시 머리에 이고 마을 회관으로 향한다.
[축문]
축문의 내용은 당산 신에게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것으로 원문은 다음과 같다.
유(維)
세차 모년 이월 일일 화순읍 세량리 거주인 대표 ○○○ 감소고우(歲次 某年 二月 一日 和順邑 細良里 居住人 代表 ○ ○ ○ 敢昭告于)
세량리 당산 수호신 작금위매년(細良里 堂山守護神 昨今爲每年)
유래지사 부락 주민 길월길일행사(由來之事 部落住民 吉月吉日行祀)
재화무관 복유존영 영안신당(災禍無關 伏唯尊靈 永安神堂)
근이주과용신 건고근고(謹以酒果用伸 虔告謹告)
[부대 행사]
예전에는 당산제를 지낸 뒤에 웃촌[웃똠]과 아래촌[아래똠]이 서로 나뉘어 줄다리기와 지신밟기를 하였으나 지금은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