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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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鎭川南智墓所-神道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 산 18-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연승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3년 9월 30일(신도비) - 충간공 남지 신도비 문화재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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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88년 9월 30일(묘소) - 진천 남지 묘소 및 신도비 충청북도 기념물 제80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진천 남지 묘소 및 신도비 충청북도 기념물 재지정 |
성격 | 묘소|신도비 |
양식 | 제방형(梯方形)의 토석혼축(土石混築) |
건립시기/일시 | 조선 전기(묘소)|1713년(신도비) |
관련인물 | 남지 |
높이 | 300㎝[묘소]|214㎝[신도비] |
지름 | 760×665㎝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 산 18-1 |
소유자 | 의령남씨 종중 |
문화재 지정번호 | 충청북도 기념물 |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남지의 묘소 및 신도비.
[개설]
남지(南智)[?~?]의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지숙(智叔)이다. 세종~단종 대의 문신으로, 영의정 남재(南在)의 손자이다. 좌의정으로 있을 때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와 함께 문종으로부터 단종을 보필하라는 고명(顧命)을 받았으나 풍질로 낙향하였다가 병사하였다. 남지가 죽은 뒤인 1489년(성종 20) 손자 남기의 상소로 충간(忠簡)이란 시호가 내려졌으며, 의성군에 봉해졌다.
[위치]
진천읍에서 국도 17호선을 따라 청주 방향으로 가다 문백면에서 양천산(凉泉山) 쪽으로 좌회전하거나, 군도 3호선을 따라 청주 방향이나 증평나들목 쪽으로 직진하다가 평산리에서 우회전하여 양천산 쪽으로 가면 산자락 끝에 진천 남지 묘소 및 신도비가 있다.
[변천]
충간공 남지의 묘소는 조선 전기에 조성되었다. 신도비의 비문은 ‘동창이 밝았느냐’로 이름난 조선 후기 문신인 8세손 남구만(南九萬)이 지었으며, 신도비는 1713년(숙종 39)에 세워졌다. 묘소의 비석은 1732년(영조 8)에 다시 세웠다.
[형태]
묘소는 사다리꼴의 대형 분묘로, 봉분의 크기는 760×665×300㎝이며 남동향이다. 봉분의 아래쪽에 돌로 테를 두른 점이 특이하다. 묘소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 1기가 있고, 오른쪽으로 비석, 장명등 1기, 문인석 한 쌍이 갖추어져 있다. 신도비는 높이 214㎝, 폭 82㎝, 두께 42㎝이며, 묘소 아래 150m 지점에 있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보호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금석문]
비석의 앞면에는 ‘좌의정충간공남지묘(左議政忠簡公南智墓)’라는 명문이 적혀 있다.
[현황]
진천 남지 묘소 및 신도비는 1988년 9월 30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8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의령남씨 종중에서 소유 및 관리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