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6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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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鎭川宋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두촌리 |
집필자 | 강민식 |
세거지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두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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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시기/연도 | 고려시대 |
성씨시조 | 송인 |
입향시조 | 송인 |
[정의]
송인을 시조 및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연원]
진천송씨(鎭川宋氏)의 시조는 고려 인종 때의 상산백(常山伯) 송인(宋仁)[?~1126]으로, 벼슬은 평장사(平章事)에 이르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고려 때 활동했던 진천 출신 인물로 송언기(宋彦琦)와 송국첨(宋國瞻)이 보인다. 송언기는 어려서부터 글을 읽었고, 고종 때 과거에 급제한 후 벼슬이 판장작감사(判將作監事)에 이르렀다. 일찍이 몽고와의 강화 사신으로 네 번이나 다녀와 변방이 안정되었다. 임금이 다시 몽고에 사신으로 보내려는데 송언기가 병들자 재상이 말하기를, 송언기가 난 것은 국가의 복이요, 죽는 것은 국가의 걱정이라 할 정도였다.
송국첨은 성품이 강직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였다. 문장을 잘하였으며, 과거에 급제하여 사관(史館)에 들어갔다. 고종 때 감찰어사(監察御史)에 제수되었고, 형부상서(刑部尙書)와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를 역임하였다. 이 밖에 충신으로 송저(宋儲), 효자로 송광도(宋匡度)가 이름났다. 송인의 7세손인 송광도는 고려 때 정용낭장(精勇郎將)에 오르고 조선 때 효행으로 정려(旌閭)되었다.
[입향경위]
진천군 덕산읍 두촌리에 상산백 송인의 묘를 쓴 이후, 후손들이 진천에 세거하면서 송인을 시조하여 850여 년 동안 세거(世居)하였다.
[현황]
200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진천군 관내에 거주하는 진천송씨는 45가구 140명으로 나타났다. 진천송씨는 진천에서 상산임씨(常山林氏) 다음으로 오래된 성씨이다.
[관련유적]
진천군 덕산읍 두촌리에 충청북도 기념물 제91호로 지정된 진천 송인 묘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