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638 |
---|---|
한자 | 宋載泰 |
영어음역 | Song, jae-Ta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낙진 |
[정의]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병장.
[가계]
본관은 진천(鎭川). 송인(宋仁)의 17세손이며, 송광보(宋匡補)의 10세손이다.
[활동사항]
송재태(宋載泰)는 숙종이 죽음에 임박하여 병약한 경종의 왕위가 위태로워질 것을 염려하여 노론의 영수 이이명과 독대하여 연잉군[훗날 영조]을 세제에 책봉되도록 하였다. 경종이 승하하자 영조가 노론의 뒷받침으로 왕위에 올랐다. 당시 소론은 정치적 주도권을 빼앗길 것을 염려하여 남인을 끌어들이는 한편, 경종이 독살되었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또한 영조가 숙종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괴소문을 퍼뜨리고 이를 명분으로 소현세자의 증손자인 밀풍군 탄을 추대하려고 하였다. 모반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계획이 새어 나가 영조가 이들을 색출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에 이인좌 등이 1728년(영조 4) 반란을 일으켜 무신란이 일어났다. 이인좌는 대원수로 자칭하고 상여에 무기를 싣고 청주에 진입하여 충청병사 이봉상, 군관 홍림, 영장 남연년 등을 살해하고 3월 청주성을 함락시켰다. 청주를 장악한 이인좌는 권서봉을 목사로, 신천영을 병사로 삼고 여러 읍에 격문을 보내어 병마를 모집하고 관곡을 풀어 민심을 동요시켰다.
반군은 청주에서 목천, 청안, 진천을 거쳐 안성, 죽산으로 향하였다. 당시 권서봉은 안성으로 진출했으며, 신천영은 청주성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북상하던 반란군은 안성과 죽산에서 도순무사 오명항이 이끄는 관군에 대패하였는데, 이때 송재태가 권서봉과 목극경을 생포하는 공을 세웠다. 송재태는 이인좌의 반란군이 진천에 침입했을 때부터 의병을 일으켜 싸웠으며, 죽산전투까지 참가하여 적장을 생포한 것이다.
[상훈과 추모]
조정에서 분무원종공신(奮武原從功臣)으로 서훈하였고, 1764년(영조 40) 공의(公義)로서 읍지에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