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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623
한자 南延年
영어음역 Nam, yeon nyeon
이칭/별칭 수백(壽伯)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낙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출신지 충청북도 진천군
성별
생년 1653년연표보기
몰년 1728년연표보기
본관 의령(宜寧)

[정의]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수백(壽伯).

[활동사항]

남연년(南延年)[1653~1728]은 1653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宣傳官)과 고부군수를 역임하였으며, 한때 당파 싸움에 휘말려 파직되기도 했다. 다시 벼슬길에 올라 훈련원판관(訓練院判官)과 황해도우후(黃海道虞候)로 있다가 이산군수·박천군수·안동부진영장(安東府鎭營將)을 역임하였다. 박천군수 재임 시절에 향교를 통해 지방 청년들의 교육에 힘을 쏟았다. 75세 때인 1727년(영조 3) 청주영장이 되었으며, 이듬해 이인좌가 양성의 권서봉과 안성의 정계원, 용인의 박완원, 괴산의 권상택 등과 반란을 일으키자 이에 맞서 싸웠다.

청주영장으로 있을 당시 이인좌의 반란군이 청주성 안으로 진입하기 위하여 행상(行喪)을 가장한 뒤 상여 속에 칼·창·활 등 각종 무기를 숨겨 수문장 양덕부를 매수하여 성안으로 들어왔다. 병사였던 이봉상(李鳳祥)과 그의 비장이었던 홍진(洪震)은 죽임을 당하였고, 남연년도 병영 안에서 자고 있다가 적의 침입을 감지하고 칼을 들고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사로잡힌 뒤 결국 죽임을 당하였다.

[묘소]

묘소는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영조가 공을 높이 평가하여 좌찬성(左賛成)을 증직하고, 충장공(忠壯公)의 시호를 내린 뒤 정려문(旌閭門)을 세우도록 하였다. 한편 남연년과 같이 순절한 이봉상·홍진과 함께 합향하는 사우(祠宇)를 세운 뒤 삼충사(三忠祠)라 하였다. 1729년 숭선군(崇善君)에 추봉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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