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16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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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婚禮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집필자 | 김덕묵 |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서 혼인과 관련하여 행해지는 일련의 의례.
[연원 및 변천]
혼인(婚姻)의 혼(婚)은 원래 혼(昏)이다. 해가 진 저녁에 예를 치른다고 하여 어두울 ‘혼’ 자를 썼으며, 인(姻)은 여자가 사람으로[남자로] 말미암아 성례(成禮)[혼인의 예식을 지냄]한다는 뜻이다. 저녁에 성례를 하기 시작한 것은 중국 주나라 때이며, 양인 남자가 음을 맞이하는 것이라 밤에 거행한 것이다.
그러나 昏이 婚으로 자연스럽게 바뀌어 사용되고 있는 것은 입장가(入丈家)[장인 집에 들어가다]의 풍습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고구려의 데릴사위 풍속이나 중국의 매부(買婦) 풍속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정혼이 되면 남자 집에서 여자 집에 많은 돈을 지불했다. 이런 남취여가(男就女嫁)의 혼속을 부끄럽게 여겨 이를 혁신하고자 애를 쓴 것은 유교 윤리를 내세운 조선 때이다. 여취남가(女就男家)하여 친영(親迎)[신랑이 신부의 집에 가서 신부를 직접 맞이하는 의식]의 혼례가 대두된 것이다. 이것이 남취여가의 인습에 밀려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다가 정착을 한 것은 2백여 년도 안 되는 근세에 와서이다.
우리나라에는 1920년부터 서양식 결혼이 일부 상류층에서 행해졌으며 인천광역시 지역의 촌락에서는 1970년대에 와서 서양식 결혼이 일반화되었다.
[절차]
전통 혼례는 의혼(議婚)[신랑 혹은 신부 양가에서 사람을 보내어 혼인에 대해서 의논], 납채(納采)[신랑 집에서 신부 집에 혼인을 구하는 의례로서 신랑 집에서 사주를 써서 신부 집에 보내면 신부 집에서는 결혼식 일자를 보냄], 납폐(納幣)[신랑 집에서 결혼식 전날 혼수품과 혼서지, 물목을 넣어 신부 집에 보냄], 친영으로 이어진다.
오늘날 행해지는 서양식 결혼식은 전통 혼례식과 서구 기독교에서 하는 방식이 혼합되어 있다.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하지만 납폐를 하며 결혼식의 말미에는 폐백을 한다. 주례가 진행하는 결혼식은 목사가 교회에서 하는 결혼 방식을 차용한 것이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문학산의 역사와 문화 유적』에 소개된 인천광역시 연수구 선학동의 김예원[2002년 당시 79세]의 사례를 보면, 중매를 통해 혼인이 성사되면 먼저 남자 집에서 예물과 생년월일을 적은 사주단자를 여자 집으로 보낸다. 혼인 당일이 되면 신랑은 말을 타고 상객(上客) 및 함진아비와 함께 신부 집으로 향한다. 신부 집에서 혼례를 치른 후 3일이 지나면 신랑 집으로 가마를 타고 가는데 이를 ‘삼일두베기’라 한다. 신부 일행이 신랑 집에 도착하면 국수, 막걸리 등으로 마을 사람에게 잔치를 하였다. 김예원은 시집으로 들어갈 때 부정을 치기 위한 관례는 하지 않았고, 시집 온 지 사흘째 되는 날부터 부엌에 나가 밥을 하고 시집 일을 익혔다. 김예원은 친정이 너무 멀어서 결혼한 지 1년이 넘어 신랑과 함께 친정으로 갔다. 이때 처가 동네에 사는 청년이 ‘신랑달기[신부 집에서 신부의 이웃 젊은이들이 신랑을 거꾸로 매달고 발바닥을 때리며 노는 일]’를 했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서는 1970년대 이전까지는 전통 혼례를 했으나 그 후로는 예식장에서 서양식으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