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03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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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長生先生墓所一圓 |
영어의미역 | Graves Area of Gim Jangsaeng and Gwangsan Gim Clan |
이칭/별칭 | 고정리 광산김씨 묘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산7-4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춘진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7월 26일 - 김장생선생묘소일원 충청남도 기념물 제47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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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김장생선생묘소일원 충청남도 기념물 재지정 |
성격 | 묘소 |
건립시기/일시 | 조선시대 |
관련인물 | 김장생 |
소유지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산7-4 |
소유자 | 광산김씨 문원공파 종중 |
문화재 지정번호 | 충청남도 기념물 |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장생과 광산김씨 문중 사람들의 묘소.
[개설]
고정리의 김장생선생묘소일원에는 조선 중기의 대학자 김장생과 광산김씨의 중흥을 이룬 김장생의 7대조모인 양천허씨, 그리고 김철산과 김철산의 처인 안동김씨, 김겸광, 김공휘, 김선생 등의 묘소가 모여 있다. 이곳에는 또한 김겸광 신도비와 김장생 신도비가 자리하고 있고, 양천허씨의 재실인 논산 영모재, 김국광 종가 및 김장생 사당과 재실 등이 자리하고 있다.
[위치]
연산역 남쪽에서 국도 1호선을 따라 서쪽으로 1.5㎞를 가면 남측에 도로가 있다. 여기에서 2.5㎞를 들어가면 고정산 골짜기 안쪽에 김장생 사당이 있는데, 김장생선생묘소일원은 김장생 사당의 뒤편 골짜기 북동향 사면에 상단부에서 하단부의 순으로 김장생, 김선생, 양천허씨, 안동김씨(김철산의 처), 김철산, 김공휘의 묘소 순으로 자리하고 있다.
[형태]
김장생 묘소의 묘비는 1614년(광해군 6)에 건립되었고, 1666년(현종 7)에 추기가 쓰여졌다. 또한 김선생 묘소에는 문인석·상석·묘비가 조성되어 있고, 양천허씨 묘소에는 문인석·석주·상석·묘비·묘비명 등이 조성되어 있다. 안동김씨 묘소에는 문인석만 양쪽에 서 있다.
김철산 묘소에는 문인석·상석·묘비·묘비명 등이 조성되어 있으며, 김공휘 묘소에는 문인석·상석·묘비·묘비명 등이 조성되어 있다. 한편 논산 영모재는 김문의 처 양천허씨의 재실이고, 염수재는 김장생 사당의 앞면에 있는 재실이다. 김장생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 맞배지붕이다.
[금석문]
김장생 비 앞면에는 ‘유명조선가의대부형조참판증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부영의정겸영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상감사세자사시문원공사계김선생지묘증정경부인창녕조씨부좌(有明朝鮮嘉義大夫刑曹參判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世子師諡文元公沙溪金先生之墓贈貞敬夫人昌寧曺氏祔左)’라고 각자되어 있다.
김선생 비 앞면에는 ‘어모장군행충좌위부사과김종선생지묘의인진주정씨부좌’(禦侮將軍行忠佐衛副司果金公先生之墓宜人晉州鄭氏祔左)’라고 음각되어 있다. 또한 양천허씨 비 앞면에는 ‘유명조선국증정경부인양천허씨지묘(有明朝鮮國贈貞敬夫人陽川許氏之墓)’라고 쓰여 있다.
김철산 묘소의 비 앞면에는 ‘유명조선국사헌부감찰증영의정김공철산지묘정경부인안동김씨부후(有明朝鮮國司憲府監察贈領議政金公鐵山之墓貞敬夫人安東金氏祔後)’라고 쓰여 있다. 김공휘 비 앞면 중앙에는 ‘유명조선통정대부행파주목사김공공휘지묘숙부인단양우씨부좌(有明朝鮮通政大夫行坡州牧使金公公輝之墓淑夫人丹陽禹氏祔左)’라고 쓰여 있다.
[현황]
김장생선생묘소일원은 1984년 7월 26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4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현재 묘소 일원이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의의와 평가]
김장생선생묘소일원은 조선 예학의 한 줄기를 형성한 김장생 묘소와 자손들의 묘소, 사당과 재실이 한 곳에 자리 잡은 곳으로, 이러한 사실은 당시 김장생을 비롯한 광산김씨의 강력한 사족 활동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고정리에는 현재에도 광산김씨들이 많이 세거하고 있어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정치, 군사, 학문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광산김씨의 정신적인 터전을 이룬 곳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