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5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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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馬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고대/초기 국가 시대 |
집필자 | 김진호 |
[정의]
초기 국가 시대 포천 지역에 영향력을 미쳤던 삼한 연맹체 중 한반도의 중부와 서남부에 존재한 국가.
[개설]
마한의 건국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와 있지 않으나, 조선 시대까지는 기원전 2세기 초에 기자 조선의 준왕(準王)이 위만(衛滿)을 피하여 바닷길로 달아나 월지국(月支國)에 세운 나라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로 목지국이라고도 한다. 목지국의 우두머리는 마한의 우두머리이며, 또한 진왕으로 추대되어 삼한(三韓)의 최고 우두머리이었다.
발굴된 유적의 특징으로 볼 때 원주민들은 기원전 3세기 이전부터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한반도 서남부를 중심으로 정치 집단을 이루었고, 목지국을 중심으로 한 소국 연맹의 형태를 유지하였다고 여겨진다. 백제가 체제를 정비하고 고대 국가로 발전하기 시작한 고이왕(古爾王) 시기부터 마한의 중심 세력이 목지국에서 백제로 이동하였다고 추측하고 있다. 이후에도 마한의 잔존 세력은 전라남도 해안 지방에서 명맥을 유지하였다. 이후 근초고왕 때 마한이 완전히 멸망한 것으로 본다.
포천은 청동기 문화를 기반으로 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古朝鮮)과 성읍 국가[군장 국가]의 하나인 진한(辰韓)의 전신인 진국(辰國)의 북방 경계 지역으로 영향을 받아 왔다. 이후 포천 지역에는 한(漢)의 분열 정책으로 유력한 정치 집단이 없었다가,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한 초기 국가 시대에 접어들어 마한의 영향에 속하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에 보이는 마한의 54개 소국 중에서 원양국(爰襄國) 또는 상외국(桑外國)을 지금의 파주·연천 방면으로 비정하기도 하거니와, 만일 원양국이나 상외국이 포천 지방을 포괄하는 소국이었다면 기원 후 3세기 무렵 포천 지방은 동쪽으로 철원·춘천 지방의 예족, 북쪽으로 대방군과 대치하면서 남쪽의 백제국 세력권 역에 들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이 백제국의 세력권 역에 들어간 때를 기원을 전후하여 온조가 백제(伯濟)를 세워 주변의 토착민을 아우를 무렵으로 보기도 하지만,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보이는 마한 54국의 존재와 다음의 사실로 미루어 볼 때, 3세기 무렵을 전후한 시기에 백제국의 세력 권역에 들어갔던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유적 현황]
포천 지역의 철기 시대나 원삼국 시대의 유적은 1994년에 발굴된 포천 영송리 선사 유적(抱川永松里先史遺蹟)[경기도 기념물 제140호]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예이다. 그런데 이 시기 주민의 이동 방향이나 그 정도로 볼 때 포천 지역에서 많은 유적이 발견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포천 영송리 선사 유적은 포천시 영중면 158-2번지 외 30필지가 해당된다. 이 유적에서 원삼국 시대에 해당하는 주거지 5기와 토기군 1개소가 발견되었다. 주거지의 구조나 드러난 토기의 양상은 지역의 문화적 특색을 잘 보여 주는데, 부뚜막 등의 유구(遺構)를 통해 한강 유역 문화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