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5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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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命旨城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 |
집필자 | 기경량 |
[정의]
통일 신라와 고려 전기 포천 지역에 있었던 지명.
[관련 기록]
『고려사(高麗史)』 세가 제1, 태조 6년에 “신축일에 명지성 장군 성달(城達)이 그 아우 이달(伊達), 단림(端林)과 함께 귀순하여 왔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같은 책 세가 제1, 태조 11년에는 “8월에 왕이 충주(忠州)로 갔다. 그때에 견훤이 장군 관흔(官昕)을 시켜 양산(陽山)에 성을 쌓았기 때문에 왕은 명지성 원보 왕충(王忠)을 시켜 군사를 거느리고 이를 쳐서 패주케 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내용]
포천 지역의 고구려 때 명칭은 마홀군으로, 통일 신라 시기 경덕왕 때 견성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명지성이라는 지명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고려사』 태조 6년의 일로 명지성 장군 성달이 아우 이달·단림과 함께 왕건(王建)에게 귀부하였다는 내용이다. 신라 말에 이르면 중앙 정부의 힘이 약화되며 각 지방의 호족들이 성주나 장군을 자칭하였는데, 이는 각 지역이 군사적 독립성을 획득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명지성이라는 지명 역시 그러한 혼란기를 배경으로 하여 생겨난 것으로 여겨진다. 명지성은 태조 11년에도 한 차례 등장하지만, 이후에는 보이지 않는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고 지방 지배 체제가 차차 정비되면서 독립적이고 군사적인 성격이 강조되는 명지성이라는 지명도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명지성이라는 지명은 나말 여초 포천 지역에도 장군을 칭하는 독자적 세력권이 존재하였다는 것을 알려 준다는 점에서 귀중한 정보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