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5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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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永平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근호 |
[정의]
조선 시대 포천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개설]
영평현(永平縣)은 1393년(태조 2) 설치된 행정 구역으로, 이후 계속 유지되다가 1618년(광해군 10)에 포천현과 합하여 영흥대도호부가 되었다. 1629년(인조 7) 두 지역이 분리되어 영평현이 다시 설치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영평현은 조선 건국 직후인 1393년에 설치된 행정 구역이다. 앞서 고려 후기 원종 때 영흥현(永興縣)이라 한 것을 계승해 현령으로 하면서 명칭을 영흥에서 영평으로 개칭한 것이다. 이는 당시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출신지인 화령부(和寧府)를 영흥부(永興府)로 고치면서 이름이 같게 되자 영흥현을 영평현으로 개칭하였다.
[관련 기록]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모두 1394년에서 설치된 것으로 기록되었다. 예를 들어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고려 현종 9년에 동주에 예속시켰고, 예종이 비로소 감무를 설치하였다. 뒤에 위사공신 강윤소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승격하여 영흥현령을 두었고, 본조 태조 3년에 지금 명칭으로 고쳤다[高麗顯宗九年屬東州 睿宗始置監務 後以衛社功臣康允紹之鄕 陞爲永興縣令 本朝太祖三年改今名]”라고 하여 1394년에 설치된 것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1394년은 1393년의 오기로, 『태조실록(太祖實錄)』 2년 9월 14일조는 “화령부를 고쳐 영흥부로 삼고, 영흥현을 고쳐 영평현으로 삼았다[改和寧府爲永興府 改永興縣爲永平縣]”라고 분명히 기록되고 있다.
[내용]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강원도 김화(金化)까지 22리, 서쪽으로 연천(漣川)까지 20리, 남쪽으로 포천까지 13리, 북쪽으로 철원(鐵原)까지 27리라고 기록되었다. 또한 땅이 메마르고 일찍 추워진다고 하였다.
[변천]
1393년 영평현으로 개칭되어 유지되다가 1618년에 군사적 필요성에 따라 포천현과 합하여 영흥대도호부로 하였다. 1629년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영평현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하여 다시 포천현과 영평현으로 분리되었다. 이후 각각 분리되어 유지되던 두 지역은 1895년 지방 관제가 개정되면서 영평현이 포천현에 병합되면서 포천군으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다음 해에 다시 분리하였다가 일제 강점기인 1914년에 영평군을 다시 포천군에 병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