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7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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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孝子吳伯周㫌門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어룡동 347-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근호 |
건립 시기/일시 | 1723년 - 효자 오백주 정문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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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86년 04월 09일 - 효자 오백주 정문 포천시 향토 유적 제3호로 지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3년 11월 28일 - 효자 오백주 정문 신축 이전 |
현 소재지 | 효자 오백주 정문 - 경기도 포천시 어룡동 347-3 |
성격 | 정려 |
양식 | 홑처마 맞배지붕 |
소유자 | 오화식 |
관리자 | 오화식 |
문화재 지정 번호 | 포천시 향토 유적 제3호 |
[정의]
경기도 포천시 어룡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오백주(吳伯周)의 정려.
[개설]
오백주는 포천시 어룡동 태생이다. 1659년(효종 10) 23세 때 무과에 급제하여 후에 귀성 도호부사(龜城都護府使)와 귀성진 병마첨절제사에 올랐다. 공직 생활이 청렴결백했고 당시 사람들의 사표가 되었다. 특히 아버지의 병환을 구하기 위해 지성으로 기도하였고 마침내 산삼과 석밀(石密)을 구해 부친의 병을 고치므로 나라에서 정문이 내려졌다.
[위치]
경기도 포천시 어룡동 347-3에 위치하고 있다. 1993년에 신축한 오씨 종중 사당과 함께 배치되어 있다. 평지에 위치하고 있으나 도로와 구별되게 자연석으로 축대를 쌓은 다음 돋워 지대를 높여 건축하였다. 뒤로는 산을 등지고 앞쪽으로는 시야가 트이면서 들이 펼쳐져 있다.
[변천]
효자 오백주 정문은 1723년(경종 3)에 축조된 것으로 시간이 경과되면서 훼손되자 1961년에 후손들이 다시 중수한 것이다. 본래 어룡리 정문골에 있던 것을 구한말에 동네 입구로 옮겨 개축하였다고 한다. 1993년 11월 28일 본래의 위치에 있던 정문골에 오씨 종중의 사당이 건축되면서 정려각도 함께 신축하여 이전하였다. 1986년 4월 9일 포천시 향토 유적 제3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정문은 홑처마 맞배지붕에 방풍판을 달았다. 규모는 정면이 4.9m, 측면이 1.85m이다. 양 측면 뒷면의 벽은 벽돌로 쌓았다. 정려문은 본래 담장을 두르거나 외문을 설치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데, 효자 오백주 정문은 예외적으로 외문을 설치하고 철책으로 담장을 둘렀다.
[현황]
효자 오백주 정문 옆에는 오백주의 증손 오수진(吳壽晋)과 그의 부인 인천 이씨의 효자 열녀 정문, 오몽량의 처인 문화 유씨의 정문 등 네 사람의 효자, 열녀 정문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