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8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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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昌彦妻吳氏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태흥2리 937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지혜 |
추모 시기/일시 | 1812년 - 김창언 처 오씨 열부 칭호 정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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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려비 | 김창언 처 오씨 정려비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태흥리 |
성격 | 열녀 |
성별 | 여자 |
[정의]
조선 후기 제주도 서귀포 지역의 열녀.
[활동 사항]
오씨(吳氏)는 오원번(吳元番)의 딸로서 의귀리 김창언(金昌彦)의 처이다. 자식을 낳고 한 달이 되기 전에 남편이 말에서 떨어져 죽자, 너무 슬퍼 장사하는 날 물에 몸을 던져 남편의 뒤를 따랐다. 열부 칭호는 1812년(순조 12)에 정표되었다.
[상훈과 추모]
열녀 오씨의 비는 비각이 있으며 비신의 높이는 63cm이다. 비의 앞면 상단에는 가로쓰기로 ‘열부오씨지려(烈婦吳氏之閭)’라 쓰여 있고 그 아래에 세로쓰기 한자로 ‘열녀 오씨는 오원번의 딸로서 의귀리 김창언의 처이다. 자식을 낳고 한 달이 되기 전에 죽자 너무 슬퍼 장사하는 날 물에 몸을 던져 남편의 뒤를 따랐다. 오호라! 여자의 절행이 예에 따랐다 하나 그 목숨을 아깝다 아니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가 몇 사람이나 될까? 임신 십이월 일일[烈氏以學君衙吳元番女 適慶州后歸人金昌彦生一子夫滿一月 而其天死出殯之日自投萬丈之水 以候夫魂嗚呼女之節行位古□限而下□□共命白殯朔軀會後樂人□方作哉□度壬申十二月一日]’이라 쓰여 있다.
뒷면에는 열녀 오씨의 효행 업적을 국한문 혼용으로, 옆면에는 비의 개건 연대 등을 적었다. 비석은 남원읍 태흥초등학교에서 서쪽 의귀리 방향 200m 지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