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469
한자 心山金昌淑生家
이칭/별칭 김창숙 생가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칠봉2길 50-4[칠봉리 504]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정지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01년연표보기 - 심산 김창숙 생가 중수·개축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1년 - 심산 김창숙 생가 증축
문화재 지정 일시 1991년 5월 14일연표보기 - 심산 김창숙 생가 경상북도 기념물 지정
현 소재지 심산 김창숙 생가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칠봉2길 50-4[칠봉리 504]지도보기
성격 생가
정면 칸수 4칸[안채]|4칸[사랑채]
측면 칸수 1칸[안채]|1칸[사랑채]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북도 기념물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에 있는 개항기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심산 김창숙의 생가.

[개설]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1879~1962]은 1879년(고종 16) 7월 10일에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에서 태어났다. 본명 대신 어리석다는 뜻의 ‘우(愚)’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였고, 일제의 고문으로 다리를 다친 뒤에는 벽옹(躄翁)이라는 별호를 사용하였다. 1907년(순종 1)에 대한협회 성주지회(大韓協會星州支會)를 설치하였으며 성주군 지역의 국채 보상 운동을 이끌었다. 1909년(순종 3)에 성명학교(星明學校)를 설립하여 구국 운동에 힘썼다. 1962년에 건국 훈장 대한민국장이 수여되었다.

[위치]

심산 김창숙 생가(心山金昌淑生家)는 성주군 대가면 칠봉2길 50-4[칠봉리 504번지]에 있다. 청천서원(晴川書院)에서 200여 m 아래쪽 사도실 마을 어귀에 있다.

[변천]

최초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김창숙이 태어나기 전부터 세거하여 왔다. 김창숙이 22세 되던 해인 1901년(고종 38)에 화재로 불에 탄 안채를 중수·개축하였다. 1991년에는 사랑채와 판각교를 건립하였다.

[형태]

원래는 안채만 있었으나, 1991년에 사랑채를 건립한 후부터는 안채와 사랑채가 앞뒤로 배치되어 있다. 건물은 모두 ‘一’ 자형이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판각교가 있어 전체 배치는 ‘ㄷ’ 자형을 이룬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이다. 부엌 1칸과 양쪽에 방 1칸이 있고, 중앙에 대청이 있는데 앞쪽에 유리문을 달아 놓았다.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이다. 대청마루 2칸과 방 2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왼편에 대문채가 있다.

[현황]

심산 김창숙 생가는 1991년 5월 14일에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심산 김창숙 생가에서 성주군청 쪽으로 가다 보면 1974년에 후손과 지역 유림들이 김창숙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심산 기념관이 있다.

[의의와 평가]

심산 김창숙 생가는 성주군 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심산 김창숙이 태어난 장소로서 그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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