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성주문화대전 > 성주향토문화백과 > 삶의 자취(문화유산) > 기록유산 > 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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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7년 이원정이 목판본으로 간행한 성주목과 칠곡도호부의 사찬 읍지. 이원정(李元禎)[1622~1680]의 본관은 광주(廣州)이며, 자는 사징(士徵), 호는 귀암(歸巖)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정구(鄭逑)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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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지역 최초의 사찬 읍지인 『경산지』 의 초고본. 『경산지(京山志)』의 집필 과정과 관련한 이원정(李元禎)의 친필 『경산지』 초고본이다. 이 친필 초고본은 이후 간본(刊本)과 비교해 보았을 때 서문(序文)이 쓰여지지 않은 상태이고, 내용 서술 중간에 첨삭한 부분이 많은 등 초고 단계의 미완의 사본(寫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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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에 편찬한 『경상도읍지』에 수록된 성주목의 관찬 읍지. 1832년 규장각은 『각도읍지(各道邑誌)』에 빠진 고을 읍지를 채워 넣어 완질을 갖추기 위해 읍지 수집 공문을 내려 『각도읍지』를 완성하였다.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는 원래 『각도읍지』 경상도편 20책이었는데,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각도읍지』 80책 중 경상도편을 1878년에 편찬한 『경상도읍지』 14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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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이순흠이 석인본으로 간행한 성주군의 읍지. 이순흠(李舜欽)[1872~1945]의 본관은 고성(固城)이며, 자는 선약(善若), 호는 학산(學山)이다. 문장이 탁월하여 18세에 성주의 향교장을 지냈다. 성주군 성주읍 학산리에 이순흠이 자비로 봉황지(鳳凰池)를 만들어 주민들의 관개(灌漑)를 도운 공덕을 기리는 송덕비(頌德碑)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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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4월 대한제국 내부의 훈령에 따라 성주군에서 편찬한 읍지. 조선은 1895년 5월 26일 전국 8도를 23부로 개편하고, 부·목·군·현을 군으로 통일하였다. 1896년 8월 4일에는 23부를 13도로 통합하였는데, 8도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충청·전라·경상·평안·함경도를 남북으로 나눈 것이다. 1899년 4월 대한제국 내부(內部)에서는 13도 관찰부에 훈령을 내려 각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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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6년 규장각과 경상감영의 지시로 편찬한 성주목 읍지. 1786년 정화순(鄭華淳) 목사 재임 당시 편찬하였다. 1786년 전국적인 읍지 편찬 사업이 실시됨에 따라 각 도 감영은 관내 각 고을 수령이 주도하여 편찬한 읍지를 엮어 정부에 상송하였다. 현재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 덴리 도서관[天理圖書館] 이마니시 문고[今西文庫]에 소장되어 있으며, 마이크로필름으로 제작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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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0년 전국 읍지인 『여지도서』 편찬 당시 성주목에서 편찬한 읍지. 『여지도서(輿地圖書)』 편찬 사업 당시 홍문관은 각 고을에 35개 항목을 수록하도록 규정을 내려 보냈으나, 경상도에서는 5개 항목을 추가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모든 항목을 반영하였다. 당시 경상도 각 고을에서는 중앙에 올려 보낼 3권[어람·홍문관·성균관], 감영에 비치할 2권을 만들어 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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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경산지』를 재필사한 『영남읍지』의 성주목 읍사례. 1894년 7월 1일 군국기무처는 각도의 감영·병영으로부터 주부군현(州府郡縣)·진(鎭)·역(驛)·보(堡)에 이르기까지 읍지(邑誌)와 읍사례(邑事例)를 편찬하여 올리게 하였다. 읍지와 읍사례 수집의 실질적인 업무는 의정부가 주관하였다. 『첩보존안(牒報存案)』에 따르면, 경상감영에서는 1895년 2월 27일에 읍지와 읍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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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이전에 편찬한 읍지를 바탕으로 재필사하여 경상도 도지에 수록한 성주목 읍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읍지(邑誌)』 경상도편(제37~50책)은 경상도의 71개 고을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1878년(고종 15) 경상도 71개 고을 읍지의 완질을 갖추기 위하여, 이전에 편찬한 읍지를 바탕으로 재필사하면서 환적 등에 지방관을 추기한 것이다. 원래는 열고관에 있던 『읍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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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도한기가 저술한 성주군 읍지. 저자 도한기(都漢基)[1836-1902]는 성주읍 예산리 출신으로 본관은 성주, 호는 관헌(管軒)이다.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의 문인이다. 1856년부터 1876년까지 20여 년간 성주목의 향리로 근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