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7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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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聖三 |
영어공식명칭 | Gwon Seongsam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영배 |
출생 시기/일시 | 1881년 - 권성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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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8년 5월 - 권성삼 권경대 의진에서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908년 9월 30일 - 권성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강도 및 폭동 혐의로 징역 15년 선고받음 |
추모 시기/일시 | 2015년 - 권성삼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권성삼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작은리 모방골 |
활동지 | 권성삼 활동지 - 경상북도 성주군 |
활동지 | 권성삼 활동지 - 경상남도 합천군 |
활동지 | 권성삼 활동지 - 경상남도 거창군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성주 출신 의병.
[개설]
1908년 5월~9월, 당시 28세의 나이로 경상북도 성주, 경상남도 합천, 거창 등 여러 지역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이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항일 의병이다.
[활동 사항]
권성삼(權聖三)[1881~?]은 경상북도 성주군 법산면 방동(方洞)[지금의 수륜면 작은리 모방골]에서 출생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을 전후하여 전국 각지에서 다시 의병이 일어났다. 이른바 중기 의병이었다. 이후 중기 의병은 1907년 7월 고종 황제의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의 군대 해산이라는 나라가 무너지는 위기의 순간들을 맞으면서 새로운 모습의 항일 투쟁인 후기 의병으로 이어졌다.
권성삼은 1908년 5월경 경상남도 합천 출신 이화집(李化執), 충청북도 충주 출신 오경화(吳敬和) 등과 함께 권경대(權景大) 의진에 들어가 활동하다가, 박기장(朴己長)·여국명(呂國明) 의진과 연합하여 경상 남북도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8년 6월 10일경 동료 의병들과 함께 화승총을 휴대하고 경상남도 합천군 숭산면 수전동의 문진사(文進士) 집으로 들어가 금 30관문(貫文)을 군자금으로 징수하였다. 같은 해 8월 5일에는 경상북도 성주군 청파면 우수동[지금의 수륜면 백운리]의 손선달(孫先達)의 집에 들어가 한전(韓錢) 9관 300문을 군자금으로 모집하였다. 그러나 활동을 계속 이어가던 중에 체포되어 1908년 9월 30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강도 및 폭동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2015년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