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8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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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基燮 |
영어공식명칭 | Hong Giseop |
이칭/별칭 | 학삼(學三),우송(友松)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경남 |
출생 시기/일시 | 1873년 6월 2일 - 홍기섭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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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2일 - 홍기섭 성주읍 장날 독립 만세 시위 주도 |
몰년 시기/일시 | 1919년 4월 2일 - 홍기섭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77년 - 홍기섭 대통령 표창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1년 - 홍기섭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홍기섭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명포리 279 |
활동지 | 홍기섭 활동지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성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학삼(學三), 호는 우송(友松). 자헌대부(資憲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홍선걸(洪善杰)의 6세손이며, 아버지는 홍병표(洪秉杓)이다.
[활동 사항]
홍기섭(洪基燮)[1873~1919]은 1873년 6월 2일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명포리 279[현 선남면 명포리]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을사늑약 때 오적(五賊)을 성토하며 공론 환기를 위해 노력했고, 1910년 일제가 국권을 강탈하자 각처의 동지를 규합하고 국권 회복을 위한 구국책을 논의하는 등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1919년 3.1 운동이 발발하자 송규선(宋圭善), 송우선(宋祐善), 송회근(宋晦根), 김창렬(金昌烈) 등과 함께 만세 시위를 계획하고 선전문과 태극기를 만들어 각 동리로 배부하는 거사 준비를 하였다. 경상북도 성주 지역의 3.1 운동은 1919년 3월 28일 장날에 선남면 선원동[현 선원리]의 이현기(李玄琪) 등이 먼저 시작했으나, 가장 큰 만세 시위는 유림과 기독교 세력이 연합하여 추진한 4월 2일의 성주읍 장날 만세 시위였다.
홍기섭은 1919년 4월 2일 오후 1시경 성주읍 장터에서 이기정(李基定), 이기현, 송인집(宋寅輯), 송회근 등과 함께 시위를 주도하며 3,0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대대적인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해산 명령을 내렸지만 굴하지 않고 계속 시위행진을 하였다. 주도 인물들은 즉각 경찰서로 연행되었고, 분노한 3,000여 명의 시위대가 경찰서로 몰려가 만세를 부르고 석방을 요구하며 투석전을 벌였다. 일경의 발포로 홍기섭과 이태희(李兌凞)가 현장에서 순국하고, 이봉희(李鳳熙) 등 7명이 부상을 입었다.
[상훈과 추모]
1977년 대통령 표창, 1991년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