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성주 지역의 역사. 성주 지역은 신라 시대 본피현(本彼縣)이었다가 경덕왕(景德王)이 신안(新安)으로 고쳐 성산군(星山郡)에 붙였다가 뒤에 벽진군(碧珍郡)으로 고쳤다. 신라는 889년(진성 여왕 3)부터 실정(失政)으로 인하여 전국이 일시에 분열되었다. 이처럼 혼란한 시기에 이총언(李悤言)이 이 지역을 잘 지키고 다스렸기에 이...
고려 시대 성주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고려 태조 왕건(王建)은 936년(태조 19) 9월에 통일 전쟁을 승리로 장식하고, 940년(태조 23)에 중앙 집권을 강화하기 위해 지방 군현 제도의 정비에 나섰다. 당시 군현 제도 정비의 주요 사례 중 하나가 현 경상북도 성주군 지역의 행정 구역이던 벽진군(碧珍郡)을 경산부(京山府)로 승격한 것이었다. 이후로 성주 지역은 행정 구...
고려 시대 성주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광평군(廣平郡)은 981년(경종 6)에 경산부(京山府)에서 개칭되어 995년(성종 14) 대주(岱州)로 개칭될 때까지 사용된 현 경상북도 성주군 지역의 이름이다....
995년부터 1012년까지 성주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고려의 지방 제도인 군현 제도는 태조 대에 처음 시작하여 성종 대를 거쳐 현종 대에 완비되었다. 그 과정에서 성주는 성종 대인 995년(성종 14)에 대주도단련사(岱州都團鍊使)가 되었다. 이는 성종 때 현재의 성주군 지역을 대주(岱州)로 개편하고 도단련사(都團鍊使)를 책임자로 두었던 것으로, 군사적인 목적도 있었던 조...
1018년부터 1295년까지 성주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지경산부사(知京山府事)는 고려 현종 때인 1018년(현종 9)에 제정한 현 경상북도 성주의 고을 이름이었다. 정확히는 행정 구역 이름은 경산부(京山府), 그 책임 지방관은 지사((知事)라 하였다. 이는 당시 행정 구역 및 지방 관직의 이름을 함께 사용한 것이다....
1308년부터 1895년까지 성주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고려 시대에 성주 지역은 940년(태조 23)부터 주로 경산부(京山府)라는 이름을 사용하다가, 1308년(충렬왕 34)에 ‘성주목’으로 행정 구역이 개편되면서 ‘성주’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하게 되었다. 이후로 성주목은 행정 구역과 이름이 몇 차례 바뀌기도 했지만, 1895년(고종 32) 칙령 제101호로 8도제를 폐...
1295년부터 1308년까지 성주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경상북도 성주 지역의 행정 구역은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인 1295년(충렬왕 21)에 경산부(京山府)에서 흥안도호부(興安都護府)로 승격되었다. 도호부(都護府)는 원래 중국의 한(漢)나라와 당(唐)나라에서 변경 경비와 주변 민족 통치 등을 위해 설치했던 군사 기관이다. 흥안도호부는 고려가 이런 제도를 차용한 것이었고...
고려 시대 성주 지역에 설치하였던 특수 행정 구역. 부곡(部曲)은 고대부터 있었던 지방 행정 단위로 성주에도 부곡이 존재하였다. 다만 성주 지역에 언제부터 부곡이 설치되었는지 정확히 알려 주는 자료는 없다. 부곡과 관련하여 『삼국사기(三國史記)』「지리지(地理誌)」에는 이러한 내용이 있다. “방언에 이른바 향·부곡 등 잡소(雜所)는 다시 갖추어 기록하지 않는다.” 이는 고구려, 백제...
고려 통일 전쟁기에 성주 지역의 호족 세력들이 참전한 고려와 후백제 간의 조물성 쟁탈 전투. 조물성(曹物城)[조물군]은 고려 태조 왕건(王建)과 후백제 견훤(甄萱)이 경상북도 일대에서 주도권 쟁탈전을 벌일 때 주요 군사 거점 중 하나였다. 924년(고려 태조 7) 7월과 925년 10월, 두 차례에 걸쳐 격돌한 양군 간의 조물성 전투에 성주 지역의 호족 세력들도 참전했을 것으로 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