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20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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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中央公園-群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산1-2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김충배 |
성격 | 고인돌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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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연도 | 청동기시대 |
높이 | 53㎝|60㎝|40㎝|30㎝|90㎝|60㎝|30㎝|100㎝|70㎝|40㎝(1~10기순) |
지름 | 190㎝|200㎝|220㎝|250㎝|350㎝|415㎝|210㎝|150㎝|185㎝|120㎝(1~10기순)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산1-2 |
[정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중앙공원 내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무덤군.
[개설]
분당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조사된 171기의 추정 고인돌 중 대표적인 10기를 모아놓은 고인돌군이다.
[위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산1-2번지에 위치한 중앙공원 내에 원형의 형태로 이전 복원되어 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1980년대에 정부에서는 수도권 지역의 주택난 해소와 인구 분산을 목적으로 성남시 분당 일대에 대규모의 신도시 개발 계획을 수립하였고, 이에 따라 개발 사업으로 인해 사라질 수 있는 유적을 보전하기 위해 1989년 성남분당지구문화유적 지표조사, 1990년 분당지구문화유적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9개 기관 10개소에 대해 수행된 지표 조사와 발굴 조사를 통해 총 171기의 고인돌이 확인되었지만 대부분이 자연 암괴이거나 원래의 위치에서 벗어난 것들로 결론지어졌다. 다만 도촌동과 분당동 등 일부 지역에서 발굴된 고인돌들은 하부 구조 흔적이 확인되었으나 이 또한 심하게 교란되었고, 출토 유물이 약간의 민무늬토기 조각 이외에는 거의 전무한 상태여서 정확한 규모나 형태 및 성격이 파악되지 않았다. 현재 중앙공원에 놓인 고인돌들은 그 중 대표적인 것 10기를 모아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여 복원한 것들이다.
[형태]
이전 복원된 10기는 각각 ① 한양대박물관에서 조사한 분당동 357-2번지의 190×152×53㎝ 규모를 가진 것과 200×126×60㎝ 규모를 가진 것 등 2기, ② 고려대박물관에서 조사한 야탑동 191-1번지의 220×150×40㎝ 규모의 것과 250×140×30㎝ 규모의 것, 그리고 야탑동 185번지의 350×280×90㎝ 규모의 것 등 3기, ③ 경희대박물관에서 조사한 야탑동 산30번지의 415×250×60㎝ 규모의 것 1기, ④ 성균관대박물관에서 조사한 야탑동 307번지의 210×170×30㎝ 규모의 것 1기, ⑤ 숭실대박물관에서 조사한 도촌동 산83번지의 150×80×100㎝, 185×100×70㎝, 그리고 120×130×40㎝ 규모의 것 등 3기로 구성된 것이다.
이들은 발굴 자료에 따라 엄격하게 복원되었다기보다는 조경을 고려한 임의적인 이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표 조사 당시 고인돌의 뚜껑돌(개석)과 동일한 재질의 암맥이 노두에 드러나지 않았고, 경작지에 흩어져 있던 암석들이 상당한 정형성을 보이고 있어 단순히 주변의 암맥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또 일부 지역이기는 하나 고인돌의 하부 구조 흔적과 약간의 민무늬토기 조각 등이 확인되는 등 고인돌로서의 가능성 또한 배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아직까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학계의 명확한 검토가 선행되지 않았으므로 섣부른 판단은 유보하여야 할 것이다.
[의의와 평가]
조사 결과 확실한 고인돌 유적으로 볼 수 있는 명확한 유구가 없었고, 유물이 거의 전무하여 정확한 유적의 성격은 파악되지 않았지만, 일부에서 고인돌로서의 흔적이 발견됨으로써 고인돌의 자료가 매우 드문 이 지역 일대에 고인돌 사회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확인함과 더불어 고인돌 연구에 하나의 자료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