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22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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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士介 |
영어공식명칭 | Han Sa Kae |
이칭/별칭 | 사렴(士廉)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장필기 |
[정의]
조선 전기 성남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청주. 자는 사렴(士廉)이고, 좌찬성 한계희(韓繼禧)의 넷째 아들이다.
[활동사항]
1480년(성종 11) 처음 별제에 제수되고, 이어 의금부도사를 거쳐 주부, 좌랑을 역임하였다. 그 후 조봉대부에 올라 상의원별좌와 부정, 정을 역임하였다. 1503년(연산군 9) 1월 4일에는 전주판관(全州判官)을 지낼 때에 외사촌형인 여자신(呂自信)이 전라도 관찰사(全羅道 觀察使)로 부임하여 사촌간이므로 상피(相避)[친족 또는 기타 관계로 같은 곳에서 벼슬하는 일이나 청송(廳訟), 시관(試官) 따위를 피함]함을 상소하자 교체되어 내직으로 들어왔다. 1504년(연산군 10) 4월 17일에는 조지서·정성근·구성·최숙근의 논죄(論罪)때에 어전토론(御前討論)에 참석하여 정의의 의견을 개진(開陳)하여 주위로부터 올곧다는 칭송을 들었다. 1505(연산군 11) 첨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이후 통정대부에 승진, 영흥부사와 해주목사, 광주목사, 진주목사를 역임하였다.
[묘소]
묘역은 성남시 분당구 율동 자연공원 내에 부 한계희의 묘 아래에 정부인 경주이씨와 함께 합조하였다. 묘비는 드물게 일월이 양각되어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 84호로 지정되었다.
[상훈과 추모]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