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0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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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京畿誌仁川府邑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손승호 |
[정의]
1842년에 편찬된 『경기지』에서 현재 경기도 시흥시의 지리적 사항을 기술한 읍지.
[개설]
『경기지(京畿誌)』는 1842년 당시 경기도에 있던 33개 군현과 영종진(永宗鎭) 등 34개 고을의 읍지를 기록한 책으로, 경기 지방의 도별 지지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읍지의 체제나 내용이 각 군현별로 다른 것으로 보아 각 군현에서 작성한 내용을 관찰사(觀察使)가 그대로 묶어서 합한 책으로 짐작된다.
[형태 및 구성]
경기도 각 군현의 읍지를 4개의 책으로 합해서 제작하였으며, 지방 세력의 입장에서 각 지방의 인물과 문화를 드러내기 위해 작성하였다. 읍지의 크기는 가로 30.3㎝, 세로 20.2㎝이다. 제1책은 88장, 제2책은 87장, 제3책은 95장, 제4책은 91장으로 구성되었고, 채색이 되었으며 34장 46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도에 군현의 하위에 있는 면에 대한 내용을 기재하였으며, 방리조(坊里條)와 도로조(道路條)를 독립된 항목으로 설정하였다. 각 세대별 호구조(戶口條)를 신설했지만 그 내용은 상세하지 않아 1840년의 호적에 의한 호구 총수만이 기재되었다. 또한 제영조(題詠條)를 신설하였으며, 시와 기문을 기록하고 인물조(人物條)를 세분하여 인물의 수를 증가시켰다. 각 군현별로 포함된 항목과 순서에 많은 차이가 있다. 이는 각 군현별로 편찬한 읍지를 수합하여 묶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징]
『경기지』 「인천부읍지(仁川府邑誌)」에서는 이전의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 소홀히 다뤄졌던 제영조가 복원되었지만, 『여지도서』와 마찬가지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저본(底本)으로 삼았다. 목차는 건치 연혁(建置沿革), 관원(官員), 군명(郡名), 풍속(風俗), 산천(山川), 방리, 토산(土産), 성지(城池), 봉수(烽燧), 관방(關防), 제언(堤堰), 교원(校院), 역원(驛院), 사묘(祠廟), 불우(佛宇), 총묘(塚墓), 고적(古蹟), 공해(公廨), 창고(倉庫), 호구, 전부(田賦), 봉름(俸廩), 관속(官屬), 제영, 인물, 열녀(烈女), 충신(忠臣), 명환(名宦) 등의 순이다.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에 해당하는 신고개면·황등천면·전반면에 속하는 각 리의 명칭을 비롯하여 소래산이 기록되어 있다. 제언조(堤堰條)에는 당시 신고개면에 있던 장둔(獐屯), 황등천면에 있던 송우송(松又松)과 며아내(旀兒乃), 전반면에 있던 소교(召橋)와 무지내(無池乃) 등이 기록되어 있다. 지금의 시흥시에 해당하는 지역에는 청평군(淸平君) 한언(韓堰)의 무덤, 청천군(淸川君) 한준(韓準)의 무덤, 판서(判書) 한여직(韓汝溭)의 무덤, 교천군(蛟川君) 이극정(李克正)의 무덤,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구종직(丘從直)의 무덤 등이 있던 것으로 기록되었으며, 소래산 아래에는 하우명(河友明)의 표비(表碑)가 있다는 기록도 포함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의 항목을 토대로 새로운 표준 서식을 도입하여 내용을 보강한 경기도 도지(道誌)이다. 고종 대에 이르러 활발하게 편찬된 도지보다 앞서는 형태로서 읍지 편찬을 비교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이 읍지를 통해 19세기 전반 인천부(仁川府)의 지리적 상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으므로 지금의 시흥시에 해당하는 지리도 알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