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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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丘従直墓 |
영어공식명칭 | Tomb of Koo Jongji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 산15-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창현 |
조성 시기/일시 | 1477년 - 구종직 묘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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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404년 - 구종직 출생 |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477년 - 구종직 사망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35년 - 구종직 신도비 건립 |
현 소재지 | 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 산15-1 |
성격 | 묘소 |
양식 | 원형 단분 |
관련 인물 | 구종직 |
소유자 | 평해 구씨 종중 |
관리자 | 평해 구씨 종중 |
[정의]
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구종직의 묘.
[개설]
구종직(丘従直)[1404~1477]의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정보(正甫), 호는 백결(白潔), 시호는 안장(安長)이다. 아버지는 풍저창부사(豊儲倉副使) 구양선(丘揚善), 어머니는 선공감정(繕工監正) 공성길(孔成吉)의 딸이다. 1444년(세종 26) 식년(式年)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에 보임되었다가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에 제수되었다. 1447년(세종 29) 영동현감으로 나가서 선정을 베풀었다. 1455년(단종 3) 사간원좌헌납(司諫院左獻納)이 되었으며 1456년(세조 2) 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로 재임하다가 낙안군수로 나가서 치적을 쌓아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1461년(세조 7) 성균관사성(成均館司成)으로 승진하고 이듬해 고성군수를 거쳐 1463년(세조 9) 참소를 당해 파직당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1466년(세조 12) 공조참판에 오르고 등준시(登俊試)에 급제하여 승진하였다. 1468년(세조 14) 판중추부사를 거쳐 1469년(성종 즉위년) 성종이 즉위하자 의정부좌찬성에 이르렀다. 문장이 뛰어나고 『주역』과 『시경』에 능하였다. 구종직이 교서관정자(校書館正字)로 재임 중 경회루에서 우연히 마주친 세종 앞에서 『춘추』 한 권을 암송하자 이에 감탄한 세종이 정9품에서 종5품 부교리로 특배(特拜)하였다는 일화가 전한다.
[위치]
구종직 묘는 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 산15-1번지로 봉재산 동쪽 구릉 중턱의 군부대 안에 자리하고 있다.
[형태]
구종직 묘 동쪽 구릉에는 부인 온양 정씨(溫陽鄭氏)의 묘가 별도의 분묘로 조성되어 있다. 구종직 묘의 봉분 앞에는 묘표·상석·향로석과 장명등이 있고, 좌우로 문인석·망주석 각 한 쌍이 세워져 있다. 높이 1.87m의 문인석과 높이 1.89m의 장명등은 그가 죽은 성종 때 세워진 것으로 보이고, 그 밖의 석물들은 1936년 신도비를 세울 때 추설한 것으로 보인다.
[금석문]
구종직 묘 아래에는 1935년에 세운 신도비가 있다. 신도비는 기단(基壇)·비신(碑身)·옥개석(屋蓋石) 형식인데, 비신의 높이는 1.83m, 폭 63㎝, 두께 37㎝이다. 비신의 전액(篆額)에는 “숭정대부 좌찬성 시안장 구공신도비명(崇政大夫左贊成諡安長具公神道碑銘)”이라 새겨져 있고, 비제(碑題)에는 “숭정대부 의정부좌찬성 판중추부사 겸 지경연춘추관사 시안장 호백결 구공신도비명 병소서(崇政大夫議政府左贊成判中樞府事兼知經筵春秋館事諡安長號白潔具公神道碑銘幷小序)”라고 적혀 있다. 비문은 성균관대사성 김상덕(金商德)이 짓고, 글씨는 이조참판 민병승(閔丙承)이 썼으며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 윤용구(尹用求)가 전자(篆字)하였다.
[현황]
구종직 묘와 신도비는 군부대 안에 있어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다.
[의의와 평가]
구종직 묘의 문인석과 장명등은 성종 대 제작된 것으로 조선 초기 석물 연구에 크게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