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4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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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崇祖墓 |
영어공식명칭 | Tomb of Jeong Sungj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광석동 산4-2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병권 |
조성 시기/일시 | 1503년 - 정숭조 묘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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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 시기/일시 | 1985년 - 정숭조 신도비 건립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469년 - 정숭조 출생 |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528년 - 정숭조 사망 |
현 소재지 | 경기도 시흥시 광석동 산4-2 |
성격 | 묘소 |
양식 | 상하분 |
관련 인물 | 성종|정인지|정승효|풍양 조씨|정현조|의숙공주|김안국 |
[정의]
경기도 시흥시 광석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정숭조의 묘.
[개설]
정숭조(鄭崇祖)[1442~1503]의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효숙(孝叔), 호는 삼성재(三省齋)·우련(友蓮)이다. 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문성공(文成公) 정인지(鄭麟趾)이다. 1458년(세조 4) 음보(蔭補)[조상의 덕으로 얻은 벼슬]로 통례문봉례랑(通禮門奉禮郎)이 되고, 그 뒤 이조참판·공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471년(성종 2)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으로 하남군(河南君)에 봉해졌다. 1765년(영조 41) 시호(諡號) 장정(莊靖)을 받았다.
[위치]
묘는 경기도 시흥시 광석동 산4-2에 있다. 아들 정승효(鄭承孝) 묘 서측 언덕에 있으며 서향이다. 광석동에서 능곡동으로 가는 시흥대로412번길로 가다 좌측으로 축실골로 들어서면 동측의 언덕에 있다.
[변천]
시흥시 광석동 축실골은 풍수로 보아 독수리 형상이라 '취곡(鷲谷)'이라 했는데, 후대에 축실로 변하였다. 축실골에 검은 구름이 뜨면 정숭조가 위에서 내려다보니 비가 내린다는 속설이 있다. 1985년 하동 정씨(河東鄭氏) 문중에서 김안국(金安國)이 지은 묘지명으로 신도비를 세우고 정비하였다.
[형태]
묘역은 상하분(上下墳)으로 윗 무덤은 두 번째 부인 평양 조씨(平壤趙氏)의 것이고, 아랫 무덤이 정숭조의 것이다. 평양 조씨의 봉분 앞에는 묘표(墓表)만 세우고 석물을 갖추지 않았으나, 정숭조의 봉분 앞에는 방부하엽(方扶荷葉) 높이 2.19m의 묘표를 세웠다. 방부는 화강암이며 위에 복련(覆蓮)과 네 면에 안상(眼象)을 조각하였다.
비신(碑身)과 하엽은 백(白)대리석을 다듬어 사용하였다. 그리고 혼유석(魂遊石), 상석, 향로석, 높이 1.84m의 문인석, 높이 1.88m의 무인석 등 석물을 세웠다. 특히 무인석은 투구의 목가리개를 위로 올리고 상모(象毛)를 뒤로 넘겨 놓고 장검을 차지 않아 특이하다.
[금석문]
비신의 전면 글씨는 마모되어 '순성좌리공신 숭정대부 행호조판서 하남군 증익□(純誠佐理功臣崇政大夫行戶曹判書河南君贈謚□)'만 확인된다. 뒷면에는 '홍치 계해년[1503년] □월 □일 장(弘治癸亥年□月□日葬)'이라고 써 놓았다. 평양 조씨 묘표는 '정부인 조씨지묘(貞夫人趙氏之墓)'라고 쓰고, 뒷면에 '홍치 계축[1493년] 4월초 3일 장(弘治癸丑四月初三日葬)'이라고 하였다. 두 묘표 모두 음기(陰記)는 기록하지 않았다.
[의의와 평가]
정숭조 묘와 묘비를 통해 조선시대 분묘의 형태를 잘 파악할 수 있으며 특히 무인석은 조선 전기 무인석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