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평생의례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1147
한자 平生儀禮
영어공식명칭 Rite of Lifetime
영어의미역 Rite of Lifetime
영어공식명칭 Rite of Lifetime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서희

[정의]

전라남도 순천 지역에서 사람이 평생 중요한 단계마다 행해지는 의례.

[개설]

평생의례는 한 인간의 출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인생의 중요한 단계마다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의례라고 하여 통과의례라고도 한다. 평생의례는 그 과정과 내용 및 기능에 따라 이전에 속하였던 집단으로부터의 분리(分離), 새로운 집단으로의 이행을 위한 전이(轉移), 그리고 새로운 집단에의 통합을 위한 통합(統合)의 세 단계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의례를 거치면서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순천 지역에서의 평생의례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따라서 순천 지역 사람들이 출생과 함께 성장하고 죽음에 이르는 동안 각각의 단계마다 이루어지는 의례를 크게 출산의례, 성년의례, 혼인의례, 상장례, 제례의 단계로 나누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출산의례]

1. 기자습속(祈子習俗)

출산 즉 인간이 태어나는 시기를 전후하여 이루어지는 의례 행위를 출산의례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출산 이전의 대표적인 의례 행위로 기자습속을 들 수 있다. 기자습속이란 혼인한 여성이 오랜 기간 아이가 생기지 않을 때 절이나 혹은 바위 등 영험하다는 곳에 가서 아이가 생기기를 기도하거나 단골[무당]을 통해 ‘지앙맞이’를 하는 등의 의례 행위를 가리킨다. 순천 지역에서 기자습속이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곳으로 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금전산의 처자샘을 들 수 있다. 처자샘의 물을 마시고 기도를 하면 아이가 생긴다고 하여 과거는 물론 현재까지도 아이 갖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이 외에 개인적으로 단골을 집으로 불러 아이를 갖기 위한 의례인 ‘지앙맞이’를 하기도 한다. 지앙맞이는 부엌과 성주 앞에 상을 차려놓고 무당이 경을 읽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기타 기자속신 행위로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여자의 속옷을 훔쳐 입거나 남의 집 아이의 기저귀를 훔쳐서 지니고 있으면 임신이 된다고 믿어 행하기도 한다.

2. 금기

아이를 잉태한 순간부터 출산에 이르는 기간 동안 임신한 여성에게는 건강한 아이를 낳기 위해 먹는 음식과 행동 하나하나에 제약이 생긴다. 이를 출산과 관련한 금기라고 하는데, 특히 음식 금기와 관련하여 순천 지역에서는 임신하면 절대로 오리고기, 노루고기, 꿩고기 등을 먹지 않는다고 한다. 오리고기와 꿩고기를 먹으면 태어날 아기 손가락이 서로 붙어서 나오고, 노루고기를 먹으면 아이의 손이 노루발처럼 갈라져서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음식 외에도 행동거지에도 조심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임신 중 여성은 절대로 담이나 말고삐를 넘어서는 안 되는데, 임신 중에 담을 넘으면 태어난 아이가 커서 도둑질을 하게 되며, 말고삐를 넘으면 말이 새끼를 열두 달 만에 낳기 때문에 임신한 여성도 열두 달 만에 출산하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3. 출산

출산하는 방을 산방 또는 산실(産室)이라고 하며, 대개 임산부가 평소 기거했던 방에서 출산한다. 방바닥에는 과거에는 짚 등을 깔고 그 위에서 낳았는데, 특히 볏짚을 깔고 그 위에서 낳으면 아이가 커서 굶지 않고 산다고 하며, 보다 현실적으로는 출산할 때 나온 피를 정리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지금은 모두 병원에서 낳기 때문에 이러한 출산 광경을 보기란 매우 어렵다.

방의 윗목에는 짚자리 위에 삼신상을 차려놓고 순산을 기원하는데 상 위에는 자르지 않은 미역 한 가닥과 쌀 한 그릇, 그리고 물 한 그릇을 올려놓는다. 아이는 시어머니나 동네에서 아이를 많이 받아본 여성이 받으며, 난산이어서 아이가 쉽게 나오지 않을 때는 단골이 와서 경을 읽어주는 ‘푸님’을 하거나, 산모 배 위에 바가지를 놓고 위에서 지그시 눌러 아이가 빨리 나오게 도와주기도 한다.

출산 후 산모는 ‘첫국밥’을 먹는데, 첫국밥은 삼신상 위에 올려놓은 미역과 쌀로 국과 밥을 지어서 먹는다. 이후 대문에 금줄을 쳐서 아이가 태어났음을 알리는데, 금줄은 왼 새끼로 꼬며 딸일 경우 숯과 솔가지, 종이를 꽂으며 아들일 경우 여기에 고추를 더하여 꽂는다. 금줄은 세이레[스무하루째 되는 날]가 지나면 아침 일찍 거둬 조용히 불태워버리는데 이 금줄을 일찍 거두어야 아이의 혼사가 빨리 이루어진다고 한다. 특이하게 순천시 낙안면에서는 집에서 키우는 소나 돼지가 새끼를 낳아도 사흘 동안 금줄을 쳐놓는다고 하며, 이때는 집의 연장도 밖으로 빌려줘서는 안 된다고 한다.

출산 후 산모의 젖이 부족하면 ‘애기 젖 타오기’를 한다. ‘애기 젖 타오기’는 새끼줄로 묶어 연결한 두 개의 병을 산모의 목에 걸고 새벽 일찍 샘에 가서 병에 물을 담가오는데, 이때 두 개의 병에 물을 담은 후 입구를 솔가지로 막은 후 병을 아래로 향하도록 하여 집으로 온다. 집으로 온 산모는 병에 남은 물을 성주상에 올려놓고 “우리 애기 젖 잘 나오게 해주십사.”하고 비손한다. 또한, 젖이 부족할 때 남의 집 젖을 동냥해서 먹이기도 하는데 특이한 점은 사내아이를 키울 때 여자아이의 젖을 얻어다 먹이면 ‘혼인발이 싸진다[일찍 트인다]’라고 한다.

4. 백일, 돌

출산 후 아이가 맞는 가장 큰 의례는 백일과 돌이다. 백일은 태어난 지 백일이 되는 날에, 돌은 출생 후 일 년째 되는 생일에 치루는 의례로 순천 지역에서는 백일은 잘 쇠지 않고 돌은 반드시 쇤다. 백일을 쇨 때 백설기를 하여 먹는데 이 떡은 이웃에 돌리지 않고 가족끼리 조용히 먹는다. 백일과 달리 돌은 돌잔치라고 하여 크게 쇠는데, 동네 사람들에게 돌떡[팥 시루떡]을 돌리며 떡을 받은 사람들은 돌떡은 그냥 받으면 안 된다고 하여 반드시 돈이나 옷 등으로 답례를 한다. 또한, 돌잔치를 할 때 돌상 위에 돈이나 쌀, 연필 등의 여러 가지 물건을 올려놓고 아이에게 돌잡이를 하게 하는데 이때 아이가 먼저 집는 것으로 그 아이의 미래를 예측하기도 한다.

[성년의례]

아이가 태어난 후 백일과 돌을 지나 일정한 나이에 이르면 성년의례를 치르게 된다. 과거 조선시대에는 관례와 계례라는 의식을 통해 아이에서 어른이 되었음을 알렸지만,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관·계례보다는 들돌을 들어 어른이 되었음을 알리는 ‘진세례’가 더 보편적인 성년의례였다. 순천 지역에서도 ‘진세’ 또는 ‘진서’라고 하는 들돌들기 의례를 통해 성인으로서 인정받았다. 들돌들기는 마을의 당산나무 아래에 있는 들돌을 들어 아이가 이제 어른이 되었음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행위로, 들돌을 들어 어른으로 인정받은 아이의 집에서는 동네 사람들에게 막걸리나 음식 등을 대접한다. 또한, 이 들돌을 든 아이는 이제 어른으로 대접을 받기 때문에 농사일하면서 받는 품삯도 과거에 반품을 받았다면 이제부터는 온전한 품삯을 받게 된다. 현재는 들돌들기와 같은 진서례도 성년의례는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대신 국가적으로 5월 19일을 성년의 날로 정하여 축하하고 있다.

[혼인의례]

1. 중매와 사성 보내기, 날받이

성년식을 치른 후 적당한 나이가 되면 혼례식을 치르게 된다. 과거에는 혼인 당사자들이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양가 어른들의 합의에 따라 혼인을 하였지만, 지금은 거의 당사자들끼리 연애를 통해 결혼에 이른다. 과거에는 혼인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양가를 오가며 연결해주는 ‘중신애비’가 있었다. 순천 지역에서는 현재 70~80대의 노인 중 대부분은 여성은 18세에서 20세 사이에, 남성들은 20세에서 23세를 전후해서 혼례식을 올렸다고 한다. 양가 어른들이 혼인에 합의하면, 신랑 쪽에서 먼저 신부 쪽에 사성(四星)과 날받이를 보낸다. 신랑의 생년월일시를 적은 사성을 사성지에 싸서 봉투에 넣고 남색 보자기에 싸서 신부 측에 보내면, 신부 측에서 혼인날을 정해 신랑 측에 전한다. 혼인날을 받을 때는 양가 부모가 혼례를 올린 달과 제사가 있는 달은 피해 잡는다. 만약 부득이하게 제사가 있는 달에 혼례를 치르게 되면 그달에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

2. 혼례식

혼례식 날이 되어 치르는 혼례의 절차는 초행(初行) → 함 받기 → 혼례식 → 동상례와 첫날밤 보내기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초행(初行)은 혼례식 날 아침 신랑이 신부마을로 향하는 것을 이른다. 이른 아침 신랑은 한복으로 갈아입고 선영에 장가감을 고한다. 그리고 가마를 타고 신부마을로 향하는데, 초행길의 맨 앞에는 함을 진 중방이 서고, 그 뒤로 신랑의 가마와 ‘상각[상객]’, 신랑 친구들인 우인들이 따른다. 상각은 주로 아버지가 되며, 아버지가 안 계시면 큰아버지나 작은아버지가 맡는다. 함은 주로 나무판자를 이용해서 만들며, 함 속에는 혼서지와 함께 신부의 옷가지와 화장품, 패물 등이 들어있고, 그 외에 미영씨와 고추 등이 들어있다. 미영씨는 자식의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고추는 자식들 많이 낳고 잘 살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넣는다. 순천 지역에서 특이한 것은 함 속에 신부의 혼례복에 쓰이는 ‘드림수건’을 넣는 것으로, 혼례식 때 이 드림수건을 신부의 양손에 드려주게 된다.

신랑 일행이 신부마을에 도착하면 신부 측에서 마련해 둔 ‘주점’에서 잠시 쉬면서 사모관대의 혼례복으로 갈아입는다. 상각은 주점에서 쉬면서 신부 측에서 마련한 큰 상인 ‘상각상’을 받으며, 혼례식에는 참석하지 않고 식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신랑이 주점에서 사모관대를 갖추는 동안 중방이 함을 지고 신붓집으로 간다. 중방이 신붓집 대문에 들어서기 전에 “함 사라.”고 외치면 신부 측에서는 간단한 술상과 함께 정성껏 마련한 돈 봉투를 중방에게 건넨다. 그러면 중방은 함을 지고 신붓집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이때 신부의 어머니나 친척이 함을 받는다. 함을 받는 사람은 반드시 팔자 좋은 사람[아들딸 많이 낳고 잘 사는 사람]이 받아야 한다. 함을 받으면 방 가운데 놓고 친정어머니가 엉덩이로 함을 찧으면서 “아이고 시집살이 수월타!” “아따! 우리 딸 시집살이 편허다.” 등의 소리를 세 번 반복한다.

혼례식 마당 한 편에 병풍을 치고 멍석을 깔고 가운데에 ‘치님상[혼례상]’을 차려놓는다. 치님상 위에 사철나무[또는 솔잎]를 꽂은 화병을 상의 양옆에 세운 뒤 대나무를 상 가운데로 둥그렇게 굴려 모아놓는다. 또한, 혼례식에 사용될 술과 무로 조각한 잉어, 미영씨, 콩과 팥 한 중발, 산 수탉 두 마리, 근원떡 한 접시를 올려놓는다. 미영씨는 신랑 신부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콩과 팥 한 중발은 액을 쫓기 위해 놓는다고 한다. 근원떡은 혼례식 때의 팥 시루떡을 따로 일컫는 말이다. 치님상 밑에는 신랑과 신부의 ‘젙상[곁상]’이 각각 놓인다.

혼례 시간이 되면 신랑이 주점에서 나와 가마를 타고 신붓집 대문 앞에 도착한다. 신랑이 가마에서 내리기 전에 신부 측 동네 청년들이 신랑의 얼굴 가리개인 ‘사선’을 빼앗으려는 장난을 치는데 이를 ‘탈선’이라고 한다. 청년들은 탈선례를 통해 약간의 술값을 신랑에게 받는다. 신랑이 혼례식 마당에 들어서면 신랑 인접[신랑을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대문 앞에 놓인 볏 가마인 ‘짚 섬’을 밟고 들어간다. 이후 신랑이 들고 온 오리를 받아 치님상 밑에 놓인 신랑의 젙상에 올려놓는데, 오리가 한 번에 반듯하게 놓이면 아들을 낳고, 한 번에 놓이지 않고 넘어지면 딸을 낳는다고 한다.

신랑이 혼례식청에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집사의 홀기에 따라 혼례식이 진행된다. 집사의 ‘신랑동향(新郞東向)’ 소리에 신랑은 동쪽을 보고 서고, ‘신부출(新婦出)’ 소리에 신부는 방에서 나와 병풍을 등에 지고 서면 비로소 혼례식이 시작된다. 혼례식은 관세례(盥洗禮)→교배례(交拜禮)→합근례(合巹禮)→사진찍기 순으로 이루어진다. 본래 순천 지역의 전통혼례는 신랑과 신부가 서로 술을 주고받는 합근례를 마지막으로 끝이 나지만, 사진기가 도입되고부터는 혼례의 마지막은 신랑과 신부가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식이 모두 끝나면 주점에 머물던 상객을 모시고 와 신랑과 신부가 절을 올리는데 이것이 지금의 폐백이다.

혼례식 날 저녁이 되면 작은방에 신부 친척들과 동네 총각들이 신랑을 데려다 놓고 노는데 이것을 ‘동상례’라고 한다. 동상례 때는 신랑을 거꾸로 매달고 발바닥을 때리면서 골탕 먹이기도 하는데 이때 신랑이 약간의 돈이나 술과 고기 등을 내어주며 한턱을 내야 한다. 동상례가 끝난 후 비로소 첫날밤을 보내게 되는데, 신방에 차려진 상을 ‘근원상’이라고 하며 방안의 촛불은 입으로 불어서 끄지 않고 반드시 손으로 촛불 심지를 잡아 꺼야 한다. 또한, 먼저 불을 끈 사람이 일찍 죽는다고 하여 대개 신부가 손으로 끈다.

3. 신행(新行), 재행(再行), 현구고례(見舅姑禮), 근친(覲親)

혼례식 다음 날 신랑과 신부는 시댁으로 향하는데 이것을 신행이라고 한다. 하지만 좋은 날을 가려서 3일 뒤에 가기도 하고, 신랑만 먼저 가고 신부는 일 년 혹은 삼 년 뒤에 가기도 하는데 이를 ‘묵힌다’라고 한다. 신행갈 때 신부는 가마를 타고 신랑은 말을 타고 가거나 걸어간다. 신부의 상객으로는 친정아버지가 동행하며, 신부 측에서 준비한 이바지와 혼수를 짊어진 사람들이 뒤따라간다. 이바지 음식은 보통 ‘다섯 석작’ ‘일곱 석작’과 같이 석작의 짝을 맞추지 않아야 하며 이바지 음식 중 인절미는 ‘입떡치기’라고 해서 시댁에 도착하면 시어머니가 제일 먼저 꺼내 시누이 입막음한다는 의미로 시누이들의 입에 하나씩 물린다.

신부가 가마를 타고 가는 동안 도랑을 건널 때마다 ‘새미쌀[하얀 미영 보자기에 쌀은 담은 주머니]’을 하나씩 던지는데 보통 3, 5, 7개를 만들어간다. 신행 중 길에서 상여를 만나면 신랑과 신부가 가마에서 내려 상여에 절을 하고, 상여가 길 한쪽으로 비켜주면 가마가 먼저 간다.

신부 가마가 시댁에 들어서면 단골이 가마를 향해 징을 치거나 미영씨와 팥 등을 뿌려 잡귀를 떨쳐낸다. 이후 가마를 마루에 대면 신부 인접 두 명이 양쪽에서 신부를 부축해서 큰방으로 데리고 가고, 신부 인접 중 한 명이 신부의 가마 방석을 지붕에 던진다. 가마 방석이 지붕의 용머리와 같이 높은 곳으로 날아가면 아이를 늦게 낳고 지붕 위에 살짝 올라갔다가 떨어지면 빨리 낳는다고 한다.

시댁에 도착 후에 신부는 시부모를 비롯하여 시댁 친척들에게 절을 하는 데 이를 현구고례라고 한다. 이후 신행 첫날도 신랑과 신부는 큰방에서 보낸다. 신랑과 신부는 다음 날부터 아침 일찍 일어나 부모에게 문안을 올린다. 신행 3일 뒤에 다시 신랑과 신부가 친정으로 음식을 해서 가는 행렬을 재행걸음[재행]이라고 한다. 신부는 재행걸음을 다녀온 후부터 비로소 시댁 부엌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된다. 혼인한 지 일 년 뒤에 친정에 가는 것을 금침[근친]이라고 한다. 이때는 한 해 농사를 지은 뒤에 가는 것이므로 여러 가지 음식으로 장만한 이바지를 가지고 간다.

[상장례]

사람이 태어나면 반드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순천 지역에서도 죽음에 이른 사람에 대한 상장(喪葬) 의례가 치러진다. 상장례는 임종이 확인된 순간부터 이뤄지는데 초종(初終)-습염(襲殮)-성복(成服)과 발인(發靷)-우제(虞祭)와 탈상(脫喪)의 순으로 진행된다.

1. 초종(初終)

초종은 환자의 임종과 초혼, 사자상 차리기, 수시 등의 행위를 포괄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순천 지역에서는 상을 당하면 대부분 삼일장을 치르지만, 간혹 오일장을 치르는 예도 있다. 또한, 사람이 죽기 전에 혼불이 나간다고 하는데, 혼불의 색은 푸르스름하며 여자의 혼불은 꼬리가 없고 남자의 혼불은 꼬리가 있다고 한다. 혼불이 가까운 곳에 떨어지면 임종이 가깝고, 먼 곳에 떨어지면 몇 달 뒤에 초상이 난다고 믿는다.

환자의 죽음이 확인되면 임종을 지켜보던 가족 중 한 사람이 초혼한다. 초혼이란 저승길에 오른 망자의 혼을 다시 집으로 불러들이기 위한 행위로, 망자의 윗옷을 마당으로 가지고 나가 흔들면서 “복! 복! 복”하고 외친 후 지붕 위로 던진다. 이 옷은 출상 때 지붕에서 내려 불에 태운다.

초혼과 동시에 대문 밖에 사자상을 차린다. 사자를 잘 대접해서 고인을 저승으로 순탄하게 모시고 가길 염원하며 차리는 상으로, 된장, 소금, 메를 올리며 상 밑에는 짚신 한 켤레를 놓는다. 사자상이 차려지면 망자의 자식들은 그 앞에서 울면서 절을 하고 돈을 놓는다. 사자상은 차린 날 밤에 치우며, 상을 놓은 곳에 제물을 그대로 놓고 그릇과 상만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사람이 사망하면 망자의 신체가 구부러지지 않게 곧게 펴는 작업인 수시(收屍)를 행한다. 수시는 마을에서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은 사람이 하며 시신을 곧게 편 다음 일곱 매듭으로 묶어 대나무로 만든 칠성판 위에 올려놓는다. 관은 주로 소나무를 사용하며 넉넉한 집에서는 오동나무를 사용하여 만든다. 관이나 수의 등은 생전에 좋은 날을 택해 미리 마련하여 두는데 이렇게 하면 장수한다고 믿는다.

2. 습염(襲殮)

수시가 끝나면 습과 염을 행한다. 망자 위로 홑이불을 덮은 다음 조심스럽게 옷을 벗기고 솜이나 수건을 미지근한 물로 적셔서 시신을 닦아낸다. 이후에 수의를 입힌 다음 망자의 입에 쌀을 넣어준다. 버드나무나 오동나무로 만든 숟가락으로 쌀을 떠서 “가다가 배고프지 말고 잘 가라.” 등의 말을 하면서 넣어주는데 이를 ‘반함’이라고 한다. 반함이 끝나면 입 가리개로 망자의 입을 덮어주고, 손 싸개 발싸개로 손과 발 역시 싸주고 수건 가리개로 머리를 감싸준다.

입관 시간이 되면 가족들이 모두 모여 마지막으로 고인의 얼굴을 본 후 입관한다. 입관할 때는 관을 들 때 시신이 움직이지 않도록 빈 곳에 망자의 옷 등을 넣어 채워주고, 망자가 생전에 좋아했던 물건이나 돈을 같이 넣어주기도 한다. 이후 관 뚜껑을 닫고 나무못으로 박은 후에 관을 일곱 매듭으로 묶는다. 관 뚜껑에는 ‘상하(上下)’ 표시를 한다.

명정과 공포도 만드는데, 명정은 붉은 비단 위에 흰 글씨나 먹글씨로 글자를 써넣는다. 명정 문구는 남자의 경우 ‘학생○○○○지구’, 여성의 경우에는 ‘유인○○○○지구’라고 쓰며, 집안에 따라 ‘현비○○○○지구’로도 쓴다. ○○○○은 본관 성씨를 써넣는다. 만약 망자가 생전에 벼슬을 했으면 ‘현공군수○○○○지구’라고 하여 관직을 밝혀준다. 공포는 아무런 글씨가 없는 삼베로 만든 깃발이다.

3. 성복(成服)과 발인(發靷)

입관이 끝나면 그 앞에 작은 상을 차려놓고 맏상주가 술 한 잔 올린 후 절을 한다. 이것이 성복제다. 성복제가 끝나면 방문을 닫고 병풍을 친다. 성복제 이후 망자의 자녀들은 깨끗하게 목욕하고 상복으로 갈아입는다. 상복은 삼베로 만들며, 예전에 가난한 집에서는 초상이 나면 상복을 지어 입을 형편이 되지 않아서 삼년상을 행하는 집에서 빌려다 입었다고 한다. 본래 입관 이후부터 조문객들을 맞이하기 때문에 조문은 초상 이튿날부터 이루어졌지만, 최근에는 첫날부터 조문객을 맞기도 한다.

출상하기 전날 저녁에 상여 놀이를 하여 상여를 드는 사람들끼리 발을 맞추는 연습을 한다. 출상할 때는 장정들이 방안에 놓인 관을 들고 방을 왼쪽으로 세 바퀴 돌고 문턱에 놓인 바가지를 깨고 나온다. 그리고 마당에 관을 놓고 발인제를 모신다. 이때 망자의 자식들은 마지막 인사로 술을 한 잔씩 올리며 발인제가 끝나면 장지로 향하게 된다.

상여 행렬은 명정-공포-운아-만사지-영여-상여-상주 순으로 나간다. 최근에는 만사지 대신 조기를 세우고 영여 앞에 영정사진을 세우고 간다. 상여 행렬 도중에 사람들은 ‘노잣돈’이라 하여 돈을 상여에 꽂기도 하는데 이것은 망자가 먼 길을 갈 때 여비로 쓰라는 의미라고 한다. 상여는 마을 공터에서 잠시 머물면서 노제를 지내고 이후 다시 장지로 향한다.

상여가 장지에 도착하면 지관이 정한 하관 시간에 맞춰 하관한 뒤에 봉분을 완성한다. 이후 묘 앞에 제물을 차려놓고 자손들이 예를 행한다. 이를 성분제라고 하며, 성분제가 끝나면 고인의 사진과 조기만 빼고 상여에 쓰인 모든 물건을 태운다. 장지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대문 앞에 짚불을 피우고 그 위를 뛰어넘어 들어간다. 또한, 미리 준비한 소금을 뿌리기도 하는데 이와 같은 행위는 나쁜 액이나 궂은 것이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방편이라고 한다.

4. 우제(虞祭) 탈상(脫喪)

혼백을 모셔놓는 장소를 영호라고 하며, 영호는 빈방이나 마당 한 곳에 마련한다. 영호에 혼백을 모신 후에 제물을 진설하고 초우제를 지낸다. 출상 후 삼 일째가 되는 날 삼우제를 지내고 탈상한다. 본래 삼 년 상을 치른 후에 탈상하지만, 최근에는 모두 3일 탈상을 한다.

[제례]

상장례 이후에는 해마다 기제사를 통해 고인을 기리게 되는 데 이를 제례(祭禮)라고 한다. 제사에는 크게 차례(茶禮)와 기제사, 묘제로 나눠볼 수 있다.

차례는 과거에는 섣달 그믐날, 설, 추석, 정월 보름과 동지에 지내는데 달리 ‘명절제사’라고도 부른다. 세월이 흐르면서 섣달 그믐날과 설날, 추석 외에는 차례상을 차리지 않는다고 하며, 그마저도 자식들의 일정을 고려해서 설과 추석에만 차례상을 차리는 경우가 일반화되었다.

기제사는 고인이 돌아가시기 전날에 지내는 제사로, 대개 자정을 전후해서 제를 모셨지만, 지금은 거의 초저녁에 모신다. 차례나 기제사의 형식과 시간이 대체로 외지에 사는 자식들과 일가친척들의 형편에 따라 변하게 된 것이다. 기제사의 봉사대수는 4대 봉사이고, 4대 선영을 부부로 모실 때 일 년에 8번의 기제사를 지내야 하지만, 최근에는 부부를 한날로 하여 제사 일수를 줄이는 집안이 늘고 있다. 또한, 집안마다 합제를 하는 기준은 다르지만 여러 대를 한 날로 합제할 경우 윗대 남자 조상의 제일로 합하거나, 일 년 중 제일이 맨 앞에 있는 선영의 제일로 합하여 기제사를 모시기도 한다. 방의 윗목에 차려놓은 상 앞에서 제를 모시는데, 일반적인 기제사의 순서에 따른다. 제사에는 원칙적으로 여성은 제관으로 참여할 수 없지만, 부모의 제사일 경우 음복 전에 성의잔을 올릴 수 있도록 한다.

묘제는 자손들이 음력 10월에 묘나 재실에 모여 문중의 선조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의미하며 보통 ‘시제’라고 부른다. 순천 지역에서는 이를 ‘시앙’ 또는 ‘세재’라고 칭한다. 본래 묘에서 제를 지냈으나 최근에는 재각을 지어 그 곳에서 지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5대조부터 묘제로 모셔지며 제를 지내는 시간은 오전 일찍부터 이루어진다. 묘제의 순서 역시 기제사의 순서에 따르며, 선영의 묘 앞에서 제를 모실 때는 기제사와는 다르게 지방과 위패 등은 놓지 않는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