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3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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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順天都護府 |
영어공식명칭 | Suncheon Dohobu |
영어음역 | Suncheon Dohobu |
영어공식명칭 | Suncheon Dohob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관부(전통 시대)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욱 |
[정의]
조선시대 때 순천시의 옛 지명
[개설]
조선의 지방통치제도는 태종 대에 확립되어 세조 대에 일부가 수정되었는데, 그 내용은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수록되었다. 조선의 지방통치제제는 기본적으로 고려의 체제를 답습·보완한 것이였다. 다만 고려에 비하여 몇 가지 개선된 점이 있었다.
첫째 상급 지방통치제도인 도제가 확립되고, 그에 따라 8도가 확정되었다. 둘째, 계수관제가 진관제로 바꾸었다. 셋째, 모든 주, 군, 현에 파견되는 감무관이 현감으로 통일되고, 주, 군에 파견되는 지사관은 군수로 단일화되었으며, 부, 대도호부 외의 모든 단부관, 즉 부의 지부사는 도호부사로 바뀌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조선시대 지방의 행정 단위는 도(道), 부(府), 목(牧), 군(郡), 현(縣)이었다. 도에는 종2품의 관찰사가 파견되었다. 부에는 부, 대도호부(大都護府), 도호부(都護府)의 세 가지가 있었는데, 부에는 종2품의 부윤(府尹), 대도호부에는 정3품의 대도호부사, 도호부에는 종3품의 도호부사가 파견되었다. 목에는 정3품의 목사가 파견되었고, 군에는 종4품의 군수, 현에는 종5품의 현령과 종6품의 현감이 파견되었다.
조선 전기 전라도에는 종2품의 전라도관찰사 1명, 전주부윤 1명, 정3품의 나주·제주·광주 목사 등 목사 3명, 종3품의 남원·장흥·순천·담양 도호부사 등 4명, 종4품의 군수 12명, 종5품의 도사 1명, 판관 5명, 현령 6명, 종6품의 찰방 3명, 현감 31명, 교수 8명이었다. 이 중에서 순천도호부에는 종3품의 도호부사 1인, 종6품의 교수 1인이 파견되었다.
[변천]
‘순천’이라는 지명은 1310년(충선왕 2)에는 승주목에서 순천부로 강등되면서 사용되었다. 순천부는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1413년(태종 13)에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었다. 그보다 앞서 1396년(태조 5)에는 여수현이 다시 순천부의 임내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여수현과 함께 순천도호부 임내이던 돌산현, 부유현 및 다수의 향소, 부곡 등은 대략 15세기 말경까지는 모두 직촌이 되어 잡다했던 군소 고을들이 비로소 순천도호부에 하나의 고을로 통합되었다.
1598년(선조 31)에는 광양현이 순천도호부에 임내로 병합되었다가 곧 복구되었다. 왜의 침략으로 피해가 너무 커서 현을 유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1725년(영조 1)에는 여수도호부가 신설되어 전라도좌도수군절도사가 여수도호부사를 겸임하였다. 옛 여수현이 일약 도호부로 승격되어 순천도호부에서 분리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관할지역의 범위는 잘 알 수 없거니와 겨우 1년 만에 여수도호부는 폐지되고 그 땅은 다시 순천도호부에 병합되었다. 순천도호부는 두 번이나 현으로 강등되었다. 처음에는 효종 대[1649~1659] 순천도호부를 순천현으로 강등시켰다가 다시 순천도호부로 환원시켰다. 또한 1786년(정조 10)에는 다시 순천현으로 강등시켰다가 이듬해 1787년 순천도호부로 복구되었다. 이후 1896년(고종 32) 지방제도 제정으로 남원부 소속 순천군으로, 1896년 전라남도 순천군이 되었다. 이후 지방제도가 변경되면서 1995년 순천시와 승주군을 통합하여 오늘날의 순천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