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5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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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記錄遺産 |
영어공식명칭 | Documentary Heritage |
영어의미역 | Documentary Heritage |
영어공식명칭 | Documentary Heritage |
분야 | 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욱 |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에 전해지는 문자로 기록해 놓은 문집 등의 기록물.
[개설]
순천 지역의 기록 유산으로는 개인 문집과 같은 저작물, 순천부 향교·향약과 같은 지역 공동체에서 작성한 각종 장부나 고문서류, 순천 송광사와 순천 선암사 등에 보관된 불교 경전·책판, 금석문 등이 있다. 금석문에는 대체로 선정비(善政碑), 충효비(忠孝碑) 등이 많다. 순천대학교 박물관은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 관련 자료를 기증받아 소장하고 있다.
[문집 등 개인저작물]
순천에는 다양한 개인저작물들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특기할 저작으로는 『승평지(昇平誌)』와 『강남악부(江南樂府)』를 들 수 있다. 『승평지』는 1618년(광해군 10)에 당시 순천부사인 이수광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보완하기 위해 편찬한 사찬읍지이다. 1617년 편찬한 『영가지(永嘉志)』와 함께 선구적인 읍지로 역사적인 의의가 크다. 이수광(李睟光)[1563~1628]이 순천 지역 곳곳을 직접 살핀 뒤에 저술하였기 때문에 임진왜란 이후 순천의 사정을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강남악부』는 1784년 조현범(趙顯範)이 편찬한 사시집(史詩集)으로 다른 지역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없는 매우 휘귀한 서적이다. 『강남악부』에서 고려에서 조선 말까지 순천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나 행적을 악부체라는 시의 형식을 빌어 정리하였다. 지역의 역사를 시기별로, 그리고 당시의 평에 기초해 작성했다는 점에서, 지방사 연구의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순천에는 시인 묵객들이 즐비했다. 승평사은을 비롯해 승평팔문장 등 당대를 호령하던 문객들이 많았을 뿐 아니라, 문인, 학자, 유림 등이 모여 시를 읊고 문장을 논했던 시사(詩社)라는 친목단체도 많았다. 순천 읍내에는 난국사(蘭菊社), 순천향교에 승평음사(昇平吟社), 주암에 부유음사(富有吟社), 해룡에 충무음사(忠武吟社) 등이 있었고, 쌍암에 근남시사(槿南詩社)가 있었다. 이들이 지은 수많은 시가 『매곡집(梅谷集)』, 『승평지』, 『속승평지(續昇平誌)』, 『묵초시고(墨樵詩稿)』, 『근남사시고(槿南社詩稿)』에 전하고 있다.
[장부 및 고문서류]
순천부나 향교 등에서 작성한 고문서에도 다양한 것들이 있다. 순천부의 부세 운영과 관련된 것으로는 「순천부교원폐단이정절목」, 「보민고신변절목」, 「지소절목」, 「지소교폐절목」, 「정배죄인양료이정절목」 등이 남아 있다. 순천 지역 향교 운영, 관용 종이 등을 공급하기 위해 설치한 지소(紙所)의 운영 실태, 순천 지역 유배인과 민의 관계 등을 살필 수 있는 생생한 자료들이다.
순천향교에는 유생안과 또 다른 자료로서 조선시대 재지사족의 동태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남아 있다. 순천 지방 양반들의 조직인 향청의 구성원 명단을 기록한 향안(鄕案)이 그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향안류 문건은 운영규칙을 명시한 「완의(完議)」, 「입의(立議)」를 포함해 모두 13건으로, 임진왜란 직후인 1605년(선조 38)부터 1749년(영조 25)까지 작성되었다. 여기에는 조선 후기 순천 지역을 대표하는 양반들의 명단이 망라되어 있다. 특히 자료의 명칭이 「유향좌목」, 「복적향안(復籍鄕案)」, 「복적좌목(復籍座目)」, 「향집강안(鄕執綱案)」 등으로 되어있어, 이름만으로도 조선 후기 순천 지역 사족들 사이에 갈등과 변화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복적이라는 이름이 있는 것으로 보아, 향청의 구성이나 기능 등에 변화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향안이 유실되거나 폐기되었다가 다시 작성되었다는 것은 향청 운영에 변화가 있었으며, 심지어 기능이 마비되는 상황까지도 있었다는 의미이다. 또한, 향안에서 향집강안으로 명부의 이름이 바뀌는 것 역시 향안과 향청의 성격 변화를 보여준다. 향안이 향청의 임원 명단이라면, 향집강안은 향교가 조직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조선 후기 이래 수령과 지방 사족의 관계에 변화가 생기면서, 향청의 임원들이 수령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특히 1654년(효종 6) 「영장사목」을 반포하면서 사족들이 향임을 기피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향촌 운영의 구심점을 수령의 견제가 덜한 향교로 옮긴 것으로 생각된다. 순천에서는 향교가 지역의 다양한 서원들의 구심점으로 존재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순천향교에 소장된 향안은 조선 후기 순천 지역 재지사족의 동태와 구성, 순천 지역의 주도 문중 등을 규명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료이다. 이외에도 순천정충사, 충민사, 충렬사 등 임진왜란 공신들을 배향하는 서원에는 각종 교지와 서원의 운영이나 임원, 토지 소유 관계 관련 자료들이 다수 남아 있다.
한편 순천 송광사에는 국보 제43호 혜심고신제서(慧諶告身制書)가 있다. 이것은 고려시대 승려에게 하사한 제서 중 몇 점 되지 않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외에도 보물 제572호인 순천 송광사 고려고문서(順天 松廣寺 高麗古文書), 보물 제1376호 순천 송광사 티베트문 법지(順天 松廣寺 티베트文 法旨), 보물 제1661호 순천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順天松廣寺木造觀音菩薩坐像腹藏典籍), 보물 제1419호 선암사석가모니불괘불탱 및 부속유물일괄(仙巖寺釋迦牟尼佛掛佛幀-附屬遺物一括) 등이 있다. 이런 고문서는 고려시대부터 조선후기까지 불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불교 경전류]
순천에는 다양한 불경이 있지만, 1461년(세조 7)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불경들이 다수 남아 있다. 보물 제90호 대반열반경소 권9~10(大般涅槃經疏卷九~十), 보물 제204호 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삼현원찬과문(妙法蓮華經觀世音菩薩普門品三玄圓贊科文), 보물 제205호 대승아비달마잡집론소 권13~14(大乘阿毗達磨雜集論疏卷十三~十四), 보물 제206호 묘법연화경찬술 권1~2(妙法蓮華經纘述卷一~二), 보물 제207호 금강반야경소개현초 권4~5(金剛般若經疏開玄抄 卷四~五), 보물 제1520호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권1(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卷1) 등이 그것이다. 이 불경들은 불교 경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판본이나 활자, 한글 연구에 귀중한 자료들이다.
[책판]
책판류로는 보물 제1910호 계초심학인문(언해) 목판이 있다. 순천 송광사에 소장된 책판으로 전체 47매 가운데 현재 45매가 전하고 있는데, 일부 마구리[벌목한 원목이나 제재하여 만든 각재 등의 끝 면]가 결손된 것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계초심학인문(언해) 목판은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언해본 목판임과 동시에 조선 전기의 국어사 연구를 위한 중요한 자료이다. 이외에도 보물 제1909호 대방광불화엄경소 목판도 있다. 대방광불화엄경소 목판은 대장경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에 현전하는 불서 목판 중에서 가장 방대하며 유일하다. 국가의 지원 없이 한 사찰에서 비교적 단기간에 120권이나 되는 분량을 많은 전문 인력들을 동원하여 간행된 사실은 상당히 중요하다. 대방광불화엄경소 목판은 간행 당시의 경판 조성과 관련된 역사상은 물론 불교사적 사실 등 다양한 역사·문화적 실체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금석문]
순천 지역의 금석문으로는 순천팔마비와 순천임청대비를 들 수 있다. 순천팔마비는 청렴으로 순천을 상징하는 비이고, 순천임청대비는 순천 지역 성리학의 정착을 상징하는 비이다.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글씨이다. 이외에도 순천향교에는 다양한 형태의 선정비군이 있다. 순천시 송광면 평촌리, 월등면사무소, 순천시 황전면 괴목리에도 공적비군이 있다. 아울러 순천 송광사와 순천 선암사 등 고찰에도 다수의 부도와 탑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