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4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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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召文國金銅冠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고대/초기 국가 시대 |
집필자 | 이형기 |
출토지 | 탑리 고분군 -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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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의 고분군에서 발굴된 금동관.
[개설]
조문국 금동관 은 조문국의 옛터라고 추정되는 의성군 금성면 일대 탑리리 고분군에서 발견된 금동관이다. 이 금동관은 신라화한 지방 토착 세력이 신라 왕에게 받은 하사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양식적 특징]
조문국 금동관 은 5세기경 축조된 것으로 전하는 의성 탑리리 고분Ⅰ 덧널에서 출토된 금동관이다. 띠 모양의 테두리 위에 가장자리를 가늘게 자른 후 이를 꼬아 새의 깃털 모양으로 만든 세움 장식 세 개를 부착하여 조우형(鳥羽形)이라고 부른다. 신라 금관 또는 금동관이 띠 모양의 테두리 위에 나뭇가지를 간략하게 도안화한 ‘출(出)’자 모양의 장식을 겹쳐 올린 장식을 세 개 세우고, 뒤쪽에는 사슴뿔 장식을 세운 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와 비슷한 ‘조우형’ 금동관의 모습은 경주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은제관이 있으며, 고구려 고분인 무용총과 쌍영총 벽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 있는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에 그려진 사람에게서도 발견된다.
[역사적 의미]
탑리리 출토 금동관은 경주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은관의 장식이 이와 비슷한 형태를 보이기는 하지만 신라 지역에서 출토된 예가 거의 없다. 이처럼 깃털 모양의 세움 장식을 부착한 관과 관식은 고구려 지역에서 오히려 더 많이 출토되었다. 고구려의 수도였던 집안에서 출토되었다는 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 관식은 그 모양이 탑리리 고분에서 출토된 것과 매우 유사하다. 따라서 탑리리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은 당시 고구려와 신라와의 관계를 비롯하여 신라의 수도인 경상북도 경주와 지방인 경상북도 의성의 관계 등을 이해할 수 있다.
황남대총이 만들어지던 5세기 전반 신라는 고구려와의 밀접한 관계를 통해서 급속한 발전을 이루고, 지방 또한 신라 방식으로 지배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 주는 시점이다. 황남대총에서 고구려 계통의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는 사실은 신라가 고구려의 도움을 받아 급속하게 성장해 나가는 역사적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금동관이 출토된 의성 탑리리 고분은 황남대총과 마찬가지로 신라의 전형적인 무덤인 돌무지 덧널 무덤의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는 탑리리 고분군을 만든 세력은 이미 신라화한 지방 토착 세력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이 금동관은 전략적 요충지로서 의성 지역을 매우 중시한 신라 왕의 하사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