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4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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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義城鄕校大聖位版盜難事件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백지국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603년 11월 28일 - 의성 향교 대성 위판 도난 사건 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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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 장소 | 의성 향교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도동리 808 |
성격 | 의성 향교 대성 위판 도난 사건 |
관련 인물/단체 | 장현광|김건상 |
[정의]
1603년 의성 향교에서 발생한 위판(位版) 도난 및 훼손 사건.
[개설]
1603년 의성 향교에서 위판의 도난 및 훼손 사건이 발생하였다. 유교 국가에서 지방 교화의 핵심이던 향교의 문묘 훼손은 매우 큰 사건으로, 이 사건은 『선조실록(宣祖實錄)』에도 수록되어 있다.
[역사적 배경]
의성 지역은 향교가 건립되기 이전부터 공자에게 향사를 올렸다고 전해진다. 19세기 전후 저술된 것으로 추정되는 『의성현지(義城縣誌)』 학교 항목에 수록되어 있는 1670년 「현인남몽뢰기(縣人南夢賚記)」에 따르면 의성 지역에는 문소군 시절부터 공자의 사당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공자를 비롯한 다섯 성인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고려 시대에는 향교의 역할도 담당하였으나 점차 쇠퇴하여 터만 남게 되었는데, 조선이 개국하면서 그 터에 의성 향교를 건립하여 인재를 양성하고 선현에 봉사하면서 전통을 이었다 .
[경과]
『선조실록』에는 ‘의성 향교 대성 위판 도난 사건’과 관련하여 3개의 기사가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603년 11월 28일 향교에 사는 유생(儒生) 신영도(申泳道)가 의성 현령(義城縣令) 장현광(張顯光)을 찾아와 “성전(聖殿) 내문의 자물쇠가 없어지고 대성전(大聖殿)의 위판(位版)과 술성공(述聖公)의 위판, 예국(豫國)·낙국(洛國) 두 정자(程子)의 위판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복성공(復聖公)·종성공(宗聖公)·아성공(亞聖公)의 위판은 상 아래에 거꾸로 놓아져 있고, 부판(跗版)이 문 밖에 던져졌으며 도국공(道國公)의 위판은 더럽혀서 뜰 가운데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전직(殿直)을 잡아 물었더니, 필시 향리(鄕吏) 김건상(金乾祥)이 한 짓일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고 고하였다.
장현광이 즉시 김건상과 전직 박복(朴福) 등을 잡아 가둔 뒤에 직접 향교에 가서 성전을 살펴보았더니 유생의 말과 같았다고 한다. 유생들에게 없어진 위판을 찾도록 하였으나 이틀이 되어도 찾지 못하여서, 남아 있는 위판을 정돈하고 문을 밀봉하는 조치를 하였다.
김건상과 수직(守直)한 유생, 전직을 안동(安東)으로 옮겨 가두고 안동 부사(安東府使) 홍이상(洪履祥), 진보 현감(眞寶縣監) 최준(崔準) 등이 추핵(推覈)하였다. 한편으로 이 일이 아랫사람을 잘못 관리하여 발생한 장현광의 잘못일 수도 있기 때문에 장현광을 추고(推考)하며 조정의 처치를 기다리는 조치가 취해졌다.
[결과]
결국 범인은 향리 김건상으로 밝혀졌으며, 이 일로 의성 현령 장현광은 문책을 받고 면직되었다. 도난 및 훼손된 위판은 다시 만들어 봉안한 뒤 위안제를 올렸다. 구체적인 사건 처리 결과와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자료 부족으로 더 이상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