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04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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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長山城 |
영어의미역 | Jangsanseong Fortress |
이칭/별칭 | 우진읍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1리 산45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이희돈 |
성격 | 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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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연도 | 신라시대 |
높이 | 150~240㎝ |
길이 | 520m |
면적 | 약 24,500㎡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1리 산45 |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에 있는 우진읍성의 옛터로 전해오는 신라시대 토축 산성.
[건립경위]
신라 말 국력이 쇠잔해졌을 때 왜적이 죽변항의 방비가 소홀함을 보고 죽변항을 거쳐 장산성으로 내침하여 성을 함락시켰다고 한다. 고려 때 읍의 치소를 울진읍 고현성(古縣城)으로 옮기고 이곳 장산성을 수축하지 못하였다.
[위치]
죽변면 후정1리 서편으로 장평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이 일대에는 삼국시대 전후 우진읍성(于珍邑城)의 옛터로 전해오는 장산성이 위치한다. 장산성은 후정1리와 후정2리의 경계 지역에 있다. 장산성으로 비정되는 곳은 장평들·막시골·작은 소정골 일대로 동해 해변가에서 서쪽으로 직선 거리 800m에 있으며, 장산성의 수군 주둔지였던 죽변성으로부터는 북서쪽으로 1.5㎞ 거리에 있다.
후정1리 신마재에서 남쪽으로 난 작은 농로로 접어들면 성황당이 길 옆에 있으며, 이 일대에 토성의 흔적이 극히 일부 남아 있다. 장평들을 가로질러 남북으로 곧게 뻗은 국도 7호선이 신설되어 있다. 장평들의 서쪽은 후정2리에 속하며, 막시골을 감싸 안고 반원상의 능선이 돌아가고 있다. 능선의 남서쪽 작은 소정골에는 관아지의 옛터로 전해오는 곳이 있다.
후정2리에 있는 장시곡골 산 속에는 망향의 비가 건립되어 있다. 이곳은 장산성의 서편 연장선에 바로 연접해 있는 곳으로 망월대라 하여 달맞이하는 곳이기도 하고, 성의 초소로 이용되었다고 전한다.
[형태]
장산성은 토성벽의 폭 240㎝, 현재의 높이 100㎝에 불과할 정도로 삭평과 유실이 많이 되었다. 성황당을 지나 남쪽 농로변에는 한 변이 39m되는 방형 저수지가 있다. 주민의 말에 의하면, 선조들로부터 전해 듣기를 이 연못은 장산성과 관련된 못으로 매우 오래 전부터 있었다고 하며, 원래는 현재보다 3~4배 정도 컸다고 한다.
토성의 흔적은 남서쪽을 향해 원만하게 흘러내리고 있다. 오랜 경작 등에 의해 대부분 논밭으로 변해버리고 야트막한 토단의 흔적만이 어렵게 확인될 뿐이다. 일단의 토성 흔적은 새로 개설된 국도 7호선에 의해 단절되었으며, 도로를 가로질러 서쪽으로 연결된다.
서쪽은 산의 지세를 이용하여 토성이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군데군데 성의 흔적을 어렵게 확인할 수 있을 뿐 확연하지는 않다. 지세로 보아 2개의 성벽선을 비정할 수 있다. 하나는 해발 75.4m 고지에서 북쪽을 향해 뻗어내린 산록을 타고 흘러내리는 선이고, 또 다른 하나는 75.4m 고지에서 계속 서진하여 90.1m 고지와 82.6m 고지를 돌아 다시 신매리로 돌아오는 선이다.
한편, 90.1m 고지의 서남쪽으로 개설된 산로를 따라 작은 소정골에 접어들면 옛날 현터로 비정되는 아늑한 분지가 나타난다. 현재 이곳에는 농가 3채가 있으며, 이 현터 안은 동쪽·서쪽·북쪽의 능선에 의해 양팔로 감싸 안은 듯한 형상의 아늑한 지형을 하고 있다.
현터의 평면 형태는 울진군 내 각종 읍성에서 보아온 전형적인 형태인 남쪽으로 입을 열고 있는 삼태기형으로 읍의 치소로서 행정적인 면과 방어적인 측면이 모두 갖춰져 있다. 현터를 감싸고 있는 능선은 자연 지형에 인공적인 토축을 보축(補築)하였다. 토축의 상단 폭은 340㎝, 현터 안쪽의 높이는 240㎝, 현터 밖의 높이는 150㎝이다.
[현황]
장산성은 성 안이 경작에 의해 대부분 원래의 모습을 잃었기 때문에 특기할 만한 유물은 채집되지 않았다. 일부분에서 생활 자기와 무문의 와편들만이 유리(遊離)되어 떠돌아다니기는 하나, 장산성의 주 사용 시기와 축성 연대 및 성의 성격을 규명할 수 있는 자료는 아니다.
장산성의 전체 윤곽은 유지(遺址)가 너무 미흡하여 정확한 형태나 축성 방법을 규명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사료와 지형을 검토하고 장산성을 기억하고 있는 주요 정보 제공자의 도움으로 어렵게나마 토성의 선을 복원할 수 있었다. 성은 총길이 2,200m, 성 안의 면적 약 389,950㎡에 이르는 장성이다. 현터의 구지는 그나마 원형을 간직하고 있으며, 길이는 약 520m이고, 현터 안의 면적은 약 24,500㎡이다.
현터 내에는 각종 건물지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성 안에는 매우 큰 못이 3개소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나 현재는 1개소의 못만 남아 있다. 현터로 전해지는 소정동 일대는 고려 때 현령(縣令)이 난을 피해 와서 관아와 창고를 짓고 한동안 현민(縣民)을 다스렸던 곳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