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4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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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溪山城 |
영어공식명칭 | Yonggyesanseong Fortress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금당리 642번지|산79번지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곽장근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0년 12월 29일 - 용계산성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75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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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용계산성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 |
현 소재지 | 용계산성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금당리 642번지|산 79번지 |
성격 | 산성 |
양식 | 포곡식 석성 |
크기(높이,길이,둘레) | 493m[둘레]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금당리에 자리하고 있는 고대 석성.
[개설]
용계산성은 금남정맥 북쪽 기슭에서 발원하는 장선천 서쪽 산봉우리에 있는 포곡식 고대 산성이다.
[건립 경위]
용계산성은 『신증동국여지승람』, 『문헌비고』, 『대동지지』 등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고대 산성으로 삼국시대 완주군 동북부 일대로 진출한 가야세력에 의해 초축된 뒤 백제, 후백제시대까지 운영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용계산성은 완주군 운주면 천등산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 말단부에 있으며, 용계산성 동쪽에는 금남정맥에서 시작해 줄곧 동북쪽으로 흘러온 장선천이 S자 모양으로 흐른다. 진안고원의 북쪽 관문으로 부여, 논산 일대에서 금남정맥 축령을 넘어 진안고원 방면, 전주에서 탄현을 거쳐 금남정맥 백령성을 넘어 충청북도와 경상북도 방면으로 가려면 대부분 거쳐야 하는 교통의 중심지이자 전략상 요충지이다.
[형태]
용계산성의 평면 형태는 거의 방형에 가깝고 동쪽과 북쪽은 직선을 이루고 남쪽과 서쪽은 약간 안쪽으로 휘었다. 용계산성은 둘레 493m로 동벽 122.6m, 서벽 114m, 남벽 145.8m, 북벽 100m이다. 성벽은 크기와 모양이 다양한 석재로 쌓아 여러 차례 개축과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용계산성 성벽은 동벽과 북벽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붕괴되었고, 북쪽 골짜기를 가로지르는 북벽의 중앙에 수구와 북문지가 있다. 성벽은 판석형 깬 돌[할석]과 방형, 장방형 석재를 가지고 수직으로 쌓았는데, 판석형 깬 돌이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다. 동벽은 산줄기를 따라 외벽만 쌓고 정상부에는 회랑도가 마련되었는데, 다른 성벽은 대부분 협축식[성벽의 내외벽면을 나란히 돌로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쌓았다. 용계산성의 북쪽 골짜기 하단부에 평탄대지가 넓게 펼쳐져 건물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벽과 남벽이 만나는 동남쪽에 우루대와 관련된 건물지가 노출되어 있는데, 지표면에 숯과 소토가 넓게 흩어져 있다. 현지 조사 때 용계산성 내부에서 다양한 종류의 기와 조각, 승석문[삿자리 무늬]과 격자문[바둑판처럼 직교가 되게 선들을 교차시켜서 생기는 사각형 무늬]이 장식된 기와 조각이 상당량 수습되었다. 용계산성은 2000년 12월 29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7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용계산성은 웅진천도 이후 백제가 갑자기 정치적으로 불안에 빠졌을 때 완주군 동북부로 진출한 가야세력에 의해 초축된 뒤 백제, 후백제시대까지 다시 개축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삼국시대 때 전라북도 동부 지역을 무대로 가야세력과 백제의 역학관계와 후백제의 충청북도, 경상북도 일대로의 진출과정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유적이다. 현재 성벽의 붕괴가 진행되고 있으므로 용계산성의 개축과정과 역사적인 의미를 밝히기 위한 발굴조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