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167
한자 金塘里
영어공식명칭 Geumda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금당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병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주군 운동하면 금당리로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35년 - 전주군 운동하면 금당리에서 완주군 운주면 금당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18.56㎢
가구수 137세대[2018년 6월 30일 기준]
인구[남/여] 238명[남 115/여 123]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금당리금당사(金堂寺)라는 절이 있어서 마을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금당리는 본래 고산군 운동상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원리, 옥배리, 궁동, 대궁동을 병합하고 ‘금당리’라 해서 전주군 운동하면에 편입되었다. 1935년에 운주면으로 개칭되면서 완주군 운주면에 편입되었다.

[자연환경]

금당리 북쪽으로 천등산[707m]이 경계를 이루며, 그 산자락이 아래 용계원성골[龍溪院城谷]이란 골짜기가 있는데 서쪽에 용계성터가 있었다. 고당리에서 이어진 장선천이 서쪽으로 흐르다가 궁동마을 전에 아래 물줄기와 합쳐 서북쪽으로 흐른다. 남서쪽에는 선녀봉 줄기가 마을의 경계를 이룬다. 서쪽과 남쪽으로는 완주군 운주면 장선리완주군 경천면 가천리, 동쪽으로는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 북쪽으로는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와 접하고 있다.

[현황]

금당리의 면적은 18.56㎢이며, 인구수는 2018년 6월 30일 기준 총 137세대, 238명[남 115명, 여 123명]이다. 장선천 주변으로 법용유원지, 금당리 계곡 등의 피서지가 있다.

금당리는 궁동, 옥배, 용계원, 원금당 4개의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원금당(元金塘)마을은 금당리의 원 마을을 지칭한다. 원금당마을에 금당사란 절이 있어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용계원(龍溪院)마을은 금당 남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시대에 용계원이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고산현 고적조에 용계리(龍溪里)가 보이고 『문헌비고(文獻備考)』에도 용계성(龍溪城)이 “백제가 주둔하던 곳이라 전한다[世傳百濟屯戌處]”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용계원 북쪽에 있는 들판을 ‘관터들’이라 했는데 이를 용계성이 있을 때의 관터라고 한다. 옥배(玉盃)마을은 용계원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오목한 그릇처럼 생겼다고 한다. 궁동(弓洞)마을은 달리는 활골이라고도 불리는데 용계원 동쪽에 있는 마을로 산모롱이가 활처럼 생겼다고 한다. 대궁동[대활골]은 궁동 남쪽에 있는 골짜기가 있는 큰 마을이었다. 궁동마을은 지속해서 분화되어 대궁동 남쪽에 있는 바위 근처에 문암(門岩)[문바우], 서남쪽에는 이목정(梨木亭)[배나무정, 찬물정] 마을이 생성되었고, 그리고 문암[문바우] 남쪽에 입암(立岩)[선바우]이 있다. 또 대궁동 서북쪽 양지 바른 곳에 한양지(漢陽地)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준령 사이에 있는 조용하고 넓은 곳으로 피나 보리를 가꾸어 먹고 사는 화전민의 흔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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