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5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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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檜巖寺-銘藥師如來三尊圖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서지민 |
[정의]
조선 전기 문정 왕후가 아들 명종의 쾌유와 세자 탄생을 빌기 위해 만들어 경기도 양주 회암사에 봉안한 불화.
[개설]
1565년(명종 20) 불화의 화기(畵記)에 의하면 문정 왕후는 명종의 장수와 선정(善政), 왕자의 다산(多産), 왕비의 회임(懷妊)과 훌륭한 세자의 탄신을 기원하기 위하여 석가, 미륵, 아미타, 약사여래의 화상(畵像)을 각기 금화(金畵)와 채화(彩畵)로 50점씩, 모두 400점을 그려 회암사가 중수되어 경찬회(慶讚會)를 개최할 때 점안(點眼)하였다고 한다. 한편 이 화기의 발문(跋文)은 당시 불교계를 주도하였던 고승인 나암(懶庵) 보우(普雨)가 썼으며, 그림은 도화원(圖畵院)에 소속된 전문 화가인 화원(畵員)이 그렸다.
문정 왕후의 발원으로 제작된 회암사의 불화 400점 가운데 현재 6점이 전하는데, 국립중앙박물관과 일본 도쿠가와[德川] 미술관에는 붉은색의 비단 바탕에 금선(金線)으로 도상(圖像)을 그린 약사 삼존도가 전하고 있고 일본 호쥬인[寶壽院]과 류조인[龍乘院]에는 비단 바탕에 채색과 금분(金粉)을 사용한 채화로 그려진 약사 삼존도가 전한다. 또한 일본 고젠지[江善寺]와 미국 뉴욕 버크컬렉션에는 채화로 그려진 석가 삼존도가 전하고 있다.
[형태 및 구성]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회암사’명 약사여래삼존도를 살펴보면, 화면의 중앙에 수미단(須彌壇)을 상징하는 높은 방형대 위에 연화좌가 있고 그 위에 왼손에 약합(藥盒)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중지와 엄지를 맞댄 구품인(九品印)의 수인을 한 약사여래가 있다. 약사여래의 불신은 금분을 바르고 굵기가 균일하고 가는 주선으로 윤곽선을 묘사하였다.
약사여래를 중심으로 해를 상징하는 삼족오(三足烏)가 묘사된 붉은 원반을 보관에 장식한 일광보살(日光菩薩)과 달을 상징하는 절구 찧는 토끼가 묘사된 원반을 보관에 장식한 월광보살(月光菩薩)이 좌우에 시립해 있다. 도쿠가와 미술관, 호쥬인, 류조인의 약사 삼존도와는 달리 국립중앙박물관의 ‘회암사’명 약사여래삼존도는 반대로 좌우 협시 보살의 도상이 표현되어 있다. 본존불과 협시 보살의 광배는 금선으로 테두리를 둘렀는데, 본존은 2조, 협시 보살은 1조의 선으로 존격(尊格)을 구분하였다.
협시 보살은 본존불의 무릎 아래쪽에 그려져 화면을 구분하고 있는데, 이러한 구도는 고려 시대의 불화에서 나타나는 양식적인 특징이다. 반면에 본존 불상은 가늘게 치켜 올라간 눈, 아치형으로 뻗은 눈썹과 콧등을 연결하여 그린 뒤에 양쪽 콧방울을 각각 덧붙인 방식, 특히 입술이 콧등의 폭을 넘지 않도록 매우 작게 그려진 점 등은 조선 전기에 새롭게 나타나는 도상의 표현 방식이다. 또한 본존불은 상반신이 길며 상대적으로 결가부좌한 다리가 낮고, 머리에 정상 계주가 표현된 점도 조선 전기의 불상과 일맥상통하는 표현 양식이다.
[특징]
현존하는 6점의 문정 왕후 발원의 회암사 불화를 살펴보면, 도상을 비롯한 세부적인 표현 방식에서 완전하게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약간씩 다른데, 불화의 밑그림인 초본(草本)이 금화와 채화에 사용된 것과 서로 달라 몇 개의 초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회암사’명 약사여래삼존도는 고려 불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조선 전기의 새로운 화풍을 반영한 수작(秀作)이다. 왕실에서 도화원에 소속된 전문 화가인 화원을 동원하여 400탱에 달하는 불화를 동시에 조성하여 회암사에 봉안한 것을 볼 때 당시 회암사의 위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2019년 1월 3일 보물 제201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